‘방안의 코끼리’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눈에 뻔히 보이지만 두려움이나 불편함 때문에 아무도 입밖에 내지 않는 큰 문제를 뜻한다. 다중이용시설 내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에 대해 첫 가동중지 명령이 내려진 지 2달이 넘어간다. 기존 사업장들의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정부는 아무런 보상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에게 가동을 중단한 498개 ESS 사업장은 ‘방안의 코끼리’인가.

2017년 8월 이후 총 21건의 ESS 화재가 발생했다. 전기제품은 화재 발생률이 0.5% 일 경우 안전하다고 판단되는데, 현재 1.5%를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안전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지난 1월 정부는 화재원인을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더 이상의 화재 발생을 막기 위해 ESS 가동 제한을 지시했다. 현재 완전 가동 중지된 ESS 사업장은 피크저감용이 1114MWh(466개소), 재생에너지 연계용이 88MWh(32개소)에 달한다.

가동이 중지된 ESS 사업장들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매 달 117억원 가량의 피해액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PF로 ESS 사업을 진행한 사업자들은 ESS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매달 상환을 진행하는데, 가동 중지 이후 원리금을 상환할 길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ESS 사업장 A는 “정부의 확산정책에 맞춰 사업성 검토를 마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ESS를 설치했다”면서 “원죄는 제조·EPC 업체에 있는데 피해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우리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제조업체가 행안부 명령으로 가동이 중지된 사업장은 보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업장들은 정부의 대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부는 피해 보상안과 관련한 질문에 “검토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 할 뿐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헨리 키신저는 “이슈를 무시하는 것은 문제를 초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인을 찾고 안전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ESS 산업의 이슈이긴 하지만, 기존 사업자들이 가동 중지 때문에 피해를 겪고 있는 것 또한 중요한 이슈다. 정부는 매달 117억원 가량의 피해액을 모른척 하지 말아야 한다. 보상안을 마련하는 것이 요원해 ‘기존 ESS 사업자’라는 이슈를 무시한다면 더 큰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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