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쳐들어오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한나라 원제는 화친을 꾀하고자 흉노 왕에게 가짜 공주를 보냈다. 궁녀를 공주로 속인 것인데, 하필이면 천하절색인 왕소군이 뽑혔다. 왕소군은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4대 미녀로 꼽힌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지은 ‘소군원’은 왕소군이 오랑캐의 왕비가 된 것을 개탄한 시다. 여기서 나오는 구절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다)’이다. 꽃피는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다는 의미다.

○…“한국전력의 발주 물량이 적어 업체들이 아우성이다. 시장 진입 업체는 계속 늘어나는데 일감은 반대로 줄어들고 있으니 이러다 뭔가 큰 사달이 날 것 같다.”

본지와 한전이 공동주최한 ‘배전분야 전력기자재 산업발전포럼’을 찾은 중전기기 주요 조합 단체장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뱉은 말이다.

이들은 너나없이 한전의 배전기자재 발주규모가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점쳤다. 별다른 호재가 없는 상황에서 한전의 실적 악화라는 대형 악재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전이 밝힌 구매 계획도 품목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작년보다 대부분 20% 넘게 감소했다.

한전을 중심으로 한 내수 시장에서 돌파구가 없다면, 해외시장이 유일한 대안 일텐데 글로벌 시장의 상황도 간단하지 않다.

한 조합 이사장은 “동남아 모 국가에서 입찰에 참여하면 1위부터 5위까지 죄다 국내 기업이다. 우리끼리 해외에 나가서 치고받는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주를 해도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격”이라고 혀를 찼다.

○…전력기자재 업종이 포함된 제조업 관련 지표도 별로 신통치 않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 제조업 재고율은 116%로 1998년 9월 122.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제품을 생산했지만 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해 팔리지 않은 물건이 쌓이는 현상으로 경기가 꺾일 때 빚어지는 현상이다. 재고 부담 때문에 공장 가동을 줄이게 되면서 경기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바닥 국면이다. 지난해 12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2.7%로 2개월 연속 떨어지며 8개월 만에 최저치로 내려앉았고 올 1월에 73.1%로 소폭 반등했다.

희망이 보이는 수치가 없지는 않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월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69로 전월 대비 2p 상승했다. 지난달에 2년 11개월 만에 최저치인 67까지 하락한 뒤 반등에 성공한 것이다. 3월 BSI 전망치는 전월 대비 무려 11p 급등한 76이다. 제조기업들의 심리가 바닥을 찍고 반등을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력기자재 시장의 오랜 불황은 과당경쟁 등 업계 스스로 자초한 면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고품질 전력 생산과 안정적 공급 등을 고려할 때 마냥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봄은 왔어도 봄 같지 않은 전력기기 시장에 활력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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