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P체제 기반 시장은 전력산업구조개편과정에서 등장했다. 원래는 전력산업구조개편의 완성을 통해 완전한 시장이 도래하면 조용히 사라질 운명이었다. 하지만 전력산업구조개편이 실패함에 따라 전력시장의 섭정으로 남아 있게 됐다. CBP체제는 전기사업법으로부터 전력시장으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는 없었기에 전력시장의 왕좌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전기사업법은 오직 전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거래가 이루어지는 체제에 대해서만 정통성을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CBP체제는 거의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섭정을 유지하면서 건재를 과시해 왔다. CBP체제를 섭정직에서 끌어내리려는 반정 시도들은 모두 무위로 끝나버렸다. CBP체제는 ‘경제급전’ 및 ‘전기요금 인상요인 제거’라는 대의명분 하에 주저함 없이 앙시앙 레짐의 잔당들과 합종연횡을 하는 등 마키아벨리적 술책을 능수능란하게 부렸기 때문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 정산조정계수, 변동비산정방식과 각종 용량계수 등이 앙시앙 레짐의 잔당들이다. 이들은 전력시장을 앙시앙 레짐으로 되돌리려는 행위를 지속해 왔고 사실상 그에 성공했다. 이제 CBP체제는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가격산정방식을 통해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자유시장경제질서를 훼손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선 CBP체제 하에서 민간 LNG발전기는 SMP와 용량요금 등을 지급받는데 개별 발전기의 실제 변동비와 제약요소를 적시에 그리고 적정하게 반영할 수 없는 변동비 산정방식의 결함으로 인해 SMP를 결정하거나 계통제약발전(SCON)을 하는 최신 발전기들조차 그 실제 변동비를 모두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만연해 있다.

아울러 용량요금은 발전기의 공급예비력 기여와 무관한 각종 용량계수에 의해 투자비 회수가 어렵도록 설계돼 있다. 이에 대해 CBP체제는 각종 용량계수의 목적이 과도한 설비의 진입을 방지하기 위해 예비율수준 등에 따라 가격신호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용량시장이 개설돼 있지 않고 예비율이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좌우돼 가격신호가 작동할 여지가 없는 점에서 그러한 설명은 핑계에 가깝다. 나아가 전력량요금 산정방식에 전력의 실시간 가치와 지역적 가치에 따른 가격신호가 존재하지 않는 마당에 유독 용량요금 산정방식에 예비율 등에 따른 가격신호가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도 납득하기 어렵다.

민간석탄발전기 또한 유사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민간석탄발전기 정산조정계수는 총괄원가 보상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경영효율성 제고 유인이라는 명목으로 표준투자비에 의한 제한을 받게 되는데 표준투자비는 입지별, 설비용량별로 표준발전기를 표준부지에 표준 부지배치로 건설한다고 가정할 경우 예상 발전기 공사비를 의미한다. 그러나 표준투자비는 가상적인 입지, 부지와 부지배치를 전제로 하기에 그 산정결과의 타당성은 앞으로 큰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 발전소의 최종투자결정(FID)에 앞서 잠재발전소를 상대로 기준가격(strike price) 입찰이 이뤄지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발전사업 허가와 정부승인차액계약(vesting contract) 체결이 이뤄졌더라면 이러한 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 터이다.

다음으로 발전자회사 정산조정계수는 투보율 격차 유지, 전원간 투자우선순위 유지, 향후 투자재원 조달, 발전자회사간 최소자본비용 상호 보전과 당기순손실 방지 등 정부의 해석 없이는 작동할 수 없는 불명확한 기준에 의존하고 있다. 이 정산조정계수는 (민간 발전기에는 적용되지 않는) 계열사간 상호 보조 메커니즘을 통해 LNG발전기를 포함한 발전자회사의 수익구조를 전체적으로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효과는 비효율적 발전기들의 퇴출과 신규 발전기들의 진입을 저해함으로써 전력시장의 효율적 작동과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비록 시장이라는 이름의 발을 내려 시장체제를 가장하고 있지만 CBP체제의 본 모습은 규제체계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 CBP체제의 폭정은 그 절정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지상 전력세계는 섭정에 등을 돌리고 있고 암암리에 그 전복을 모색하려 한다. 이제 CBP시장은 황혼에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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