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발전산업안전…’ 후속대책 발표
야당, “발전정비산업 경쟁체제 포기” 비판

6개 민간정비업체 전체 매출의 65% 경상정비 분야
위험 외주화 문제해결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능사 아냐

정부와 여당이 공공기관을 설립해 발전사 연료·환경설비 운전분야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하자 본질을 벗어난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5일 정부와 여당은 당정협의안을 바탕으로 ‘발전산업안전강화·고용안정 태스크 포스(TF)’를 구성해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구성 ▲2인 1조 근무를 위한 인력 충원 ▲연료·환경설비 운전분야 공공기관으로의 정규직 전환 ▲근로자에게 노무비 삭감 없이 지급 등의 후속대책을 발표했다.

또 앞으로 공공기관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원·하청과 상관없이 해당 기관장이 책임지게끔 하겠다고 덧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에 더해 ▲발전정비 계약 기간 6년으로 연장 ▲외부 전문기관 통해 석탄발전 설비·시설 진단 ▲안전경영위원회 설치 ▲발전정비협회 주관으로 정비분야 신규 인력에 대한 통합 안전교육 실시 등을 약속했다.

이를 두고 국회 산자위 위원장인 홍일표 자유한국당 의원은 6일 성명서를 통해 “지난 25년 동안 정부가 지속해서 추진해온 발전정비산업의 경쟁체제 도입을 포기한 것”이라며 “정책의 안정성을 저해한 것은 물론 공공기관의 비대화를 초래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공공기관이 운전분야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게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홍 의원은 “정부가 발표한 대로라면 운전분야 업무는 공공기관이 독점하게 돼 경쟁은 사라지고 비용은 상승하며, 파업 시 안전장치가 없다”며 “특히 공공기관이 연료·환경설비 운전분야 업무를 담당한다고 위험이 제거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도 7일 원내정책회의에서 “위험의 외주화 관행을 막겠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위험한 작업 현장이 안전해지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공공기관 정규직화로 인해 민간기업이 전문인력을 잃게 되거나, 발전공기업의 인력 수요가 줄어들어 청년 일자리가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관련 사안들을 충분히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산업개발 다시 공영화 하나

공공기관을 새로 만들어 연료·환경설비 운전분야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선 연료·환경설비 운전분야는 한전산업개발이 76%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한전산업개발은 지난 2003년 민영화됐다.

한산 외에도 한국발전기술(KEPS), 수산인더스트리, 금화PCS, 일진파워 등 운전분야 기업들은 모두 민간기업인데, 정책적으로 공공기관을 설립해 민간기업의 핵심인력을 채용하는 것에 대한 법적인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한전이나 발전공기업이 자유총연맹이 보유한 한산 지분 31%를 일정 부분 매수해 공영화한 뒤, 나머지 기업들에서 계약이 만료되는 근로자를 한산이 채용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안도 과거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의해 민영화한 기업을 16년 만에 다시 공영화함으로써 정책을 뒤집는 방안이기 때문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전산업개발 관계자는 “여러 방안 중에 한산 공영화도 거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전달받은 내용이 없어 현재로서는 말씀드릴 게 없다”고 말했다.

◆공은 경상정비 분야로

발전소 연료 환경설비 운전 분야가 민간영역에서 다시 공기업이 담당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이제 시선은 경상정비 분야로 쏠리고 있다. 정치권과 노동계는 현재 한전KPS와 민간정비 업체들이 담당하는 분야를 공기업에게 100% 맡기자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민간 경상정비 업체는 2003년부터 정부의 육성 플랜에 따라 성장한 전문기업이다. 전력설비 운영 유지 보수 분야에서 경상정비 업계처럼 체계적으로 전문성을 확보한 분야가 없을 만큼, 이제 해당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갖췄다. 민간 정비업체들은 꾸준히 시장 점유율을 높여 2013년 본격적으로 경쟁이 도입된 이후 지난해말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은 53%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비시장에서 민간의 영역이 높아지면서 장시간 노동, 산재은폐 등 다양한 폐혜가 발생하고 있다며 간접고용이 아닌 발전사의 직접 고용을 통해 발전소 정비의 공공성을 확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노동계의 주장대로 열악한 근무환경이 문제라면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에서 문제를 풀어야지 멀쩡한 민간 전문기업의 인력을 공기업이 빼내 공기업화 하는 것이 현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 는 별개의 문제로 보고 있다.

특히 금화PSC, 일진파워, 한국플랜트서비스 등 6개 민간 정비업체는 전체 매출의 절대적인 부분을 경상정비 분야에 의존하고 있다.

민간정비 회사의 내부자료를 분석한 결과 6개 정비회사의 2017년 전체 매출은 5299억원에 달하며 전체 매출 중 경상정비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65.2%에 달했다.

경상정비를 쏙 빼낼 경우 이들 6개 회사는 경쟁력을 상실해 회사의 존립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몰릴 수 있다. 민간정비업체들은 경상정비 물량이 꾸준히 늘면서 지난 10년간 연평균 매출이 16.3% 성장하는 등 성장세를 이어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해외시장 까지 진출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국플랜트서비스는 2009년 카타르를 시작으로 요르단, 나이지리아 등 해외 수주를 이어가고 있으며, 금화PSC는 2027년 말 기준 해외에서 24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시장의 성장하는 만큼 고용도 활발하다. 본격적으로 정비시장에 경쟁이 도입된 2013년 이후 각 회사의 인력증가율을 보면 적게는 16%에서 많게는 59%까지 늘었다. 또 6개 정비회사의 전체인력 3200여명 중에 각 회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2%~최대 15%이 인력이 60세 이상 인력으로, 이들은 공기업으로 전환되면 강제 퇴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경상정비 분야의 경우 6개 정비회사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힌 구조 때문에 이 분야를 공기업화 하는 것은 풀어야할 과제도 많고 법적 문제도 걸리는 만큼 근로조건 개선을 통해 고용시장을 안정화하는 쪽이 현실성 있는 정책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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