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새로운 해안 경관을 그리며

이민정(건축학 박사, 월간 예술부산 편집장)
이민정(건축학 박사, 월간 예술부산 편집장)

일요일 오전. 느지막이 눈을 뜬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설마 오늘이 월요일은 아니겠지. 지각이면 큰일이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벼대며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다행이다. 여전히 일요일이다. 금요일 늦은 밤까지 이어진 업무에 뒤엉킨 생각과 이로울 것 없는 고민을 풀어내며 토요일을 보냈다. 그 밤, 일요일은 좀 더 음미하며 보내보리라 다짐하며 잠이 들었지만, 주의해야 한다. 입에 문 솜사탕처럼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는 것이 주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중한 일요일 오전, 오늘의 산책로를 정해본다.

‘바다, 바다다.’ 날씨는 때 이른 봄처럼 따뜻하다. 고양이 세수를 한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길을 나선다.

오늘의 바다는 부산의 남동쪽 끝자락, 오륙도가 내려다보이는 이기대다. 왕복 두 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편안한 숲길이 있고 전망대도 있다.

이름난 관광지이기도 한 이곳은 이른 시간인데도 이미 사람들로 북적인다. 전망대에 서니 멀리 해운대와 광안리가 보인다. 검푸른 바다를 안고 선 절벽이 투박하다. 겨울 바닷바람에 메마른 풀잎들은 무심하게 흔들린다. 바다를 등지고 주위를 둘러보자니 한쪽으론 빌딩 숲이 흐릿하게 반짝이고 다른 한쪽으론 영도 풍경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여기 오니 다 보이는구나….’ 생각은 조금 쉬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움직인다. 가만히 보자니 공연장에 온 느낌이다. 바다는 무대고 바다를 둘러싼 뭍은 거대한 객석 같다. 문득 질문이 이어진다. 여긴 설계가 잘 된 좋은 공연장일까?

부산의 몇 곳을 떠올려본다. 해운대에는 이미 초고층 건물들이 병풍을 쳤다. 상대적으로 나지막했던 광안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해안을 마주한 도로변에는 공사 중인 대형 건물들이 몇 채나 된다. 백사장에 가까워질수록 건물은 키가 크고 화려하다. 자본이 바다로 전진한 탓이다.

그에 반해 영도는 무겁게 가라앉은 많은 물 위에 뜬 커다란 산이다. 부산항대교든 영도다리든 도입부터 경사진 영도에서는 어딜 가든 산길을 오르내려야 한다. 원래 지형이 그러하니 의도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디에 섰든 대부분의 골목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바다는, 그래서 모두의 것이다.

공연장 설계시 시선계획은 무대와 음향계획만큼이나 중요하다. 공연장 건축계획론을 도시 계획에 무턱대고 적용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

공연장을 설계할 때 건축가는 무대를 중심으로 전 객석의 고른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어디에서나 무대는 잘 보여야 한다. 무대에 가까운 객석일수록 관객은 더 큰 비용을 부담하지만, 무대에 가깝다고 해서 객석이 높아져 뒤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공연장이 있다면 어떨까?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만약에 그런 곳이 있다면 그 누구도 찾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함께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부산은 전국에서 5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이 가장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 중 많은 수가 해안가에 집중돼 있다. 아름다운 곳을 더 아름답게, 유명한 곳을 더 유명하게 만들어 지역경제를 지속해서 발전시킬 ‘랜드마크’를 개발한다는 차원에서는 이러한 사회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좋은 바다를 각자 능력껏 즐기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가 주장한다면 그도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건축물의 생산과 소비는 가치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지자체는 도시계획조례의 용적률만 만족시키면 건물이 어디에 있건 어떤 높이가 됐건 통과시킨다. 하나가 서니 다음 건물이 이어진다.

바닷가에 건물을 높이 지어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건물이 높아져 있을 이유가 없다.

이러한 현상에서 어떤 가치가 지배적인지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작은 특정한 누군가에게가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졌던 자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배려는 다른 사람을 위해 마음을 쓰는 것을 말한다. 바다로 나아갈수록 높아지는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양보와 배려의 가치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부산의 랜드마크가 ‘함께 살아감’이라는 인문의 가치가 된다면 어떨까.

부산 해안이 배려의 풍경, 모두의 바다가 되기를 그려보며 소소한 하루를 떠나보내고 내일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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