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성 전북대학교 강사(문헌정보학 박사)
한만성 전북대학교 강사(문헌정보학 박사)

1889년 파리 세계박람회에 맞추어 에펠탑은 완성됐다. 파리의 랜드마크가 된 에펠탑은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마천루의 사례로 남아 있다. 건축 당시 자존심 강한 파리 문화예술인의 반발이 극심했다.

작곡가 샤를 구노,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 작가 뒤마 2세와 기 드 모파상 등 46명이 함께 서명한 ‘예술인이 에펠탑에 반대한다’는 공개 항의 서한이 일간지 ‘르 탕(Le Temps)’ 1887년 2월 14일자에 실렸다. 모파상이 에펠탑을 극도로 혐오해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다녔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사랑하는 동포 시민 여러분, 우리 문필가, 화가, 조각가, 건축가, 아름다움의 애호가들은 지금까지 잘 보호된 파리에, 우리 서울의 심장에 쓸데없고 괴물 같은 에펠탑이 들어서는 것을, 무시당한 프랑스 미각의 이름으로, 위협받는 프랑스의 예술과 역사의 이름으로, 크게 분노해 온 힘을 다해 항의하러 왔습니다. 이미 ‘바벨탑’이란 이름으로 불리듯 공공의 악은 종종 선의와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됩니다.”

위와 같이 시작하는 항의문은 에펠탑이 공학자의 탐욕스러운 상상력의 결과이며, 상업주의적인 미국조차 원하지 않을 것이고(자유의 여신상처럼), 결국에는 박람회 관람객들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 주장한다. 프랑스 예술인들의 시각에는 에펠탑 건설은 기업 중심 행정의 문화적 약탈이자 파괴행위였다.

프랑스국립도서관(BNF)의 원문서비스로 ‘르 탕(Le Temps)’ 1887년 2월 14일자를 확인할 수 있는데, 공개 항의 서한 뒤에 에펠과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다. 에펠은 항의서의 내용에 조목조목 반박했고 이는 공학자와 예술가의 시각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다.

에펠탑은 성공적이었지만 이후 파리 시내에는 더 이상의 고층 건축물이 들어설 수 없었다. 옛 건축물을 공공의 예술품으로 보아 보존하는 행정에 따라 신축 건물의 철저한 규제로 7층을 넘어서는 건물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일반 건물의 높이는 20m를 넘지 못한다(정대인, <논란의 건축, 낭만의 건축가>. 규제의 예외로는 1997년에 새로 지은 국립도서관(미테랑 도서관) 정도이니 얼마나 공공성을 중시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파리에서 마천루를 보려면 20세기 들어 파리 외곽에 계획해 건설한 부심 ‘라데팡스’로 가야 한다.

최근 전주 도심에 143층 타워 건축을 계획하고 승인을 요청한 사업가가 있다. 전주시에서는 교통, 환경, 주변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제안서를 지난달에 반려했다. 전주시장은 사업자에게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공공성을 우선해야 하는 시장으로서 마땅한 결정으로 보인다.

작년 혹서로 인한 고층 아파트 정전사고가 빈발한 후 노후 변압기 교체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난 아파트가 전주시에만 326개소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전력사용 급증, 노후아파트 정전 무방비’ ‘전북도민신문’). 정전사고가 발생해도 관리는 승강기가 우선으로 배정되며 전력 변압기 등은 뒤로 밀린다는 사실도 극심한 여름의 정전 사태를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필수적인 마천루를 쉽게 허용할 수 없는 중소도시의 실정인 것이다.

대만이 랜드마크로 자랑했던 타이베이의 101빌딩도 2017년 8월 15일 ‘블랙아웃’의 위험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이후 탈원전 정책을 수정하는 결정타 역할까지 했음을 잘 알려진 대로이다. 평양의 105층짜리 ‘류경호텔’은 1987년 착공돼 2011년 완공까지 25년 동안 콘크리트의 유령으로 남아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걸어 다닌다는 북한이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완전히 속 빈 강정이다.

에펠은 예술가들의 항의문이 에펠탑의 완성을 막기에는 너무 늦게 나왔다고 반박했다. 파리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문화예술의 도시로 보존해 전 세계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을 수밖에 없는 매력을 유지하게 하는 데에는 결코 늦지 않았다.

이미 하늘을 찌를 듯한 타워가 점령해 버린 서울에는 또 다른 마천루들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고층건물에 위압 당한 서울 사람들은 야트막하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이좋은 집들을 보기 위해 한옥마을을 찾는다. 관광 수익뿐만 아니라 공공성을 우선하는 랜드마크 건축을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만성 전북대학교 강사(문헌정보학 박사)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