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값이 많이 떨어졌다. 그것도 최근 빠르게 떨어졌다. 두 달 만에 거의 1ℓ에 300원 정도는 내렸다. 지금 휘발유 값은 2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다.

휘발유 값이 떨어진 건 물론 국제유가 하락 때문이다. 석유 값도 다른 모든 것 들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수요가 늘거나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르고, 반대로 수요가 줄거나 공급이 늘면 가격은 내린다. 석유 값이 떨어진다는 건 그래서 둘 중에 하나다. 수요가 줄었거나 공급이 늘었기 때문이다. 물론 둘 다 원인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유가 하락은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OPEC은 2019년 1월부터 하루에 120만 배럴을 감산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생산량을 줄이면 공급이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가격이 올라야 하는데 원유 가격 하락추세는 그대로다.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선 OPEC의 힘은 예전과 다르다. 석유수출국기구 흔히 OPEC라고 부르는 기구는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다. 그 힘은 1973년 1차 오일쇼크에서 확인이 됐다. 이후 생산량 조절을 유가 통제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영향력은 더 커졌다. 하지만 이제는 OPEC가 120만 배럴 정도 생산을 줄인다고 해도 큰 파장이 없다. 과거와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미국의 등장이다. 이른바 셰일혁명 이후 미국은 산유량을 늘려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의 생산량과 비슷하다. 미국은 그래서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국이지만 동시에 최대 생산국이기도 하다. 그러니 OPEC가 생산량을 줄인다고 해도 그래서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면 완전히 맞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생산량을 늘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요즘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1200만 배럴까지 늘어났다.

유가 하락 추세가 변하지 않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공급이 설사 조금 준다고 해도 수요가 더 많이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중국이 등장한다. 중국은 원래 하루 원유 소비량 1100만 배럴로 신흥국 전체 소비량의 4분의 1을 차지해왔다. 하지만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결국 세계 경기 둔화가 수요 측면에서 유가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인 셈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유가 하락에 한 몫을 한다. 올 3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했다. 5월에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다시 시작한다고 발표하고 원유 수입국들에게 이란 산 원유수입의 중단을 요구했다. 원유의 공급 차질이 우려되자 유가는 올랐다. 유가가 오르자 트럼프가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유 생산을 늘리라고 압력을 가했다. 한때 유가를 띄우기 위해 감산을 생각했던 사우디지만 언론인 살해 사건으로 어려운 처지가 되면서 결국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그럼 유가 하락은 어디까지 갈까. 예상이 쉽지는 않지만 추정해볼만한 근거는 있다. 셰일 오일에는 중동산 원유와 달리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생산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셰일 오일은 사막을 파기만 하면 기름이 쏟아지는 중동과 달리 모래와 진흙이 굳어진 혈암층(shale)에 들어있어 캐내는 데 그만큼 돈이 많이 든다고 한다. 기술 개발이 이뤄지면서 채산성이 갈수록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배럴당 50 달러 정도는 해야 수지가 맞는다고 하는데, 이미 미국산 서부 텍사스산 원유 가격은 배럴당 45 달러 수준이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 유가는 아주 높아도 반대로 너무 낮아도 좋지 않다. 너무 높으면 소비자가 힘들 것이고 반대로 너무 낮으면 석유 산업이 타격을 맞는다. 그래서 이를테면 적정한 가격의 유가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건 석유 화학 산업이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도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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