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라온위즈 대표/칼럼니스트/스피치 디자이너
김수민-라온위즈 대표/칼럼니스트/스피치 디자이너

어떤 리더는 조직의 지능과 역량을 고갈시키는 반면, 모든 사람들을 천재로 만드는 리더가 있다. 전자는 디미니셔, 후자는 멀티플라이어다. 디미니셔는 혼자서 생각을 하거나 단 한 명의 측근과 모든 결정을 하며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멀티플라이어는 조직원들의 다양성을 수용하며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공감을 얻어내 일을 추진한다. 디미니셔를 만나면 그가 천재같이 느껴지고 멀티플라이어를 만나면 내가 천재같이 느껴진다. 전자는 생산성을 위해 직원을 더 뽑고 후자는 있는 직원들의 역량을 100% 끌어내 생산성을 배가시킨다. 전자는 해방자, 후자는 독재자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나이키, 갭 등 세계적인 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 브랜드 전략 및 리더십 개발 컨설팅을 하고 명문대 교육환경 변화를 주도해 온 리즈 와이즈먼은 그의 저서 〔멀티플라이어〕에서 우리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것은 불충분한 자원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가치 있는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임을 지적했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자질과 유형에 의해 성과나 미래가 달라지는 것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조명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제조업이 주류를 이룬 20세기에는 육체노동자의 생산성이 50배 증가했지만 21세기에는 생산시설이 아닌, 지식노동자의 생산성에 달려있을 뿐 아니라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이 되었다.

조직원의 역량을 충분히 이끌어내는 동력은 일하기 즐거운 곳으로 만드는 데에 있다. 직장이나 공동체를 실없는 농담이나 주고받는 휴게실 분위기로 만들자는 게 아니다. 그들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존중하며 공감해줄 때 개개인의 놀라운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 리더가 사람을 살리고 조직을 발전시킨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반도체수출 1위의 IT강국이 된 한국의 눈부신 발전에 세계가 감탄하고 있지만 유교문화의 전통과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의 조직문화에서 과연 미래시대에 글로벌 리더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사명감 없이는 일하기 어려운 직장에서 수십년 간 일을 한 경험이 있다. 신앙적인 신념이 바탕이 되어 기혼임에도 매일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주말과 휴일까지 열정적으로, 헌신적으로 일했다. 가족은 뒤로 하고 해외 출장과 연수도 많이 다녔다. 나의 재능과 잠재력을 일깨워주고 존중해주며 놀라운 성과를 내도록 이끌어준 상사들도 있었지만 권위의식과 시기심, 무시 일변도의 일방적 지시로 좌절감에 빠지게 하거나 일을 훼방하는 상사도 있었다. 상사의 억압과 불합리한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억울하면 승진하라”고 했다.

그 시련은 입사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거의 몇 개월간 소속 부서장이 일감을 주지 않아 출근해서 종일 신문만 보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네이버나 구글같은 포탈사이트가 없었고 신문과 책에서 모든 정보를 의존하던 시대였다. 노동신문부터 보수진보 계열까지 열 개가 넘는 신문을 매일 읽다 보니 자연 스크랩을 하게 되고 분야별로 통계자료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나를 아껴주던 선배의 권유로 방송이나 칼럼 자료가 필요한 선배들과 사장 비서실에 갖다 드렸더니 모두 좋아했다. 그 자료가 돌아 전문잡지 창간을 앞둔 한 출판사에서 자문해 달라는 공식요청이 회사로 왔고 결국 전화위복이 되어 회사 내에서 존재

감이 없던 나의 입지가 확고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나중에서야 부서장이 왜 내게 일감을 주지 않았는지 한 선배를 통해 알게 된 후 큰 충격을 받았다. 내 표정이 신입사원답지 않게 자신만만해 보여서 기를 죽이려는 의도였었고, 나로 인해 그의 독점 업무영역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견제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어렵게 시작된 직장생활은 내가 눈에 띄는 성과를 낼 때마다 소신있는 추진력에 대해 2계급 특진이라도 시켜야 한다는 격려세력과, 조직문화보다 자신의 주관이 앞서 낸 성과이니 인정할 수 없다는 견제세력에 둘러싸여 상급보다는 추락에 대비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간부가 되었을 때 나는 성차별의 문화를 뛰어넘어 실력있는 후배를 키워주고 부족한 후배를 보완해주는 상사, 결정과 책임의 총대를 매는 상사가 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65%가 상사와의 소통이 잘 안 된다고 답했다.

디미니셔는 자기 말만 하고 멀티플라이어는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조직의 비전에 대해 사명감을 고취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통의 90%는 귀를 사용하고 10%는 입을 사용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리더가 조직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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