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한전 경제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준형 한전 경제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

인류의 역사를 뒤돌아 보면 문명의 진보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 자원인 에너지, 교통, 통신 분야의 기술혁신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1차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의 발명을 통해 노동생산성의 비약적 혁신을 가져왔다면, 2차 산업혁명은 내연기관과 전기의 발명을 통해 근대적인 수송 시스템과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장 시스템의 도입을 촉발했다. 이에 반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3차 산업혁명과 IoT,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과거에는 물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전지구적 정보의 실시간 교환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인류에게 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하며 지능화된 삶을 안겨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류 진보의 역사를 한 꺼풀 더 들춰보면 그 바탕에는 에너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2차 산업혁명은 말할 나위도 없으며, 3∙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터넷, IoT,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도 에너지, 특히 전기가 없다면 한낱 무용지물에 불과할 것이다.

굳이 산업혁명에 대한 얘기가 아니더라도 에너지의 중요성은 수레바퀴의 양 축처럼 인류의 진보와 늘 함께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화석연료 사용 이전에는 소, 말, 낙타 등이 부자의 상징이었다면, 18세기 이후부터는 증기기관의 연료인 석탄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영국, 독일, 일본 등이 열강의 반열에 등극하였으며, 내연기관이 발명된 이후로는 글로벌 석유시장에 대한 막강한 통제력을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가 세계 권력의 양대 축으로 부상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서 볼 때, 당대의 핵심 에너지원에 대한 영향력과 군사력 또는 경제력으로 표현되는 글로벌 정치패권 간에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하겠다.

지난 반 세기 이상의 기간 동안 미국은 석유 기반의 에너지 시스템 하에서 막강한 지위를 유지해 왔다. 자국의 풍부한 석유 매장량과 세계 최대 석유 생산지역인 중동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미국 달러화 중심의 석유거래라는 시장지위를 활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 이러한 미국 중심의 글로벌 에너지 패권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일기 시작했다. 태양광∙풍력 등의 신재생 에너지로 석탄∙석유 등의 화석에너지를 대체하려는, 소위 ‘에너지전환’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 에너지전환은 독일∙스페인∙영국 등 유럽의 일부 국가들의 개별적인 에너지정책에 불과하였으나, 교토협약을 거쳐 글로벌 아젠다로 부상하였으며, 세계 경제의 양대 축 중 하나인 중국이 파리협약에 참여하면서 전지구적인 실행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에너지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에너지전환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왜 세계의 주요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는 것일까? 과거 식민주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보여온 선진국의 역사적 행태를 감안할 때, 에너지전환을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전지구적인 대의로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미국과 러시아라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국가로부터 에너지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자주권의 집단적 발현으로 해석하는 것이 쉽게 납득이 된다. 신재생을 통해 에너지를 100% 공급한다는 것은 자국 영토 내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로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재생 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유럽 국가들의 러시아 대한 의존도는 낮아질 것이며, 동아시아 국가들의 중동에 대한 의존도 또한 낮아질 것이다.

에너지 소비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에너지전환정책 또한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재생 에너지 확대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주권 확대뿐만 아니라 무역수지 개선, 일자리 창출 등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파트 중심의 거주문화, 협소한 국토면적과 높은 인구밀도, 신재생 에너지 자원분포 및 관련 산업역량, 국가간 단절된 전력망 구조 등 에너지전환 정책의 추진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특성 또한 산적해 있다. 막연한 해외 사례 추종보다는 한국적 특성에 맞는 합리적인 에너지전환 추진을 통해 어린 시절 아름다웠던 밤하늘의 추억을 회상해볼 뿐만 아니라 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김준형 한전 경제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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