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무상보증하고 부채까지 떠안아야
수익성 낮아지는데 사업 참여하는 '딜레마' 빠져

김상곤(사진 왼쪽)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서울 중구 장충초등학교를 방문해 유안근 장충초등학교 교장의 설명을 들으며 석면 텍스와 조명 등 학교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김상곤(사진 왼쪽)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서울 중구 장충초등학교를 방문해 유안근 장충초등학교 교장의 설명을 들으며 석면 텍스와 조명 등 학교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조명업계가 장기계약의 늪에 빠졌다.

최근 대부분의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LED조명 교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렌탈과 ESCO방식 등을 이용한 장기 계약 체결에 나서고 있다.

초기 투자비를 줄이고 에너지 절감분으로 사업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같은 사업 방식은 조명업계의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장기간 사후관리를 책임지게하는 등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명업계는 ‘울며 겨자먹기’로 사업에 참여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발주처 “저예산 사업 가능해 매력적”

발주처에서는 ‘회계적 이점’과 ‘사후관리의 편의성’, ‘우수 제품 설치’ 등을 이유로 장기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특히 사업 규모와 영역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렌탈 방식은 장기계약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렌탈 방식의 장점은 민간 금융이 투입되기 때문에 발주처가 부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공공기관과 지자체는 매년 재정건전성 평가를 받고, 회계 상 부채가 과하게 잡혀 있으면 개선 후 보고해야한다.

이러다보니 민간 금융을 투입해 계획된 사업을 진행하면서 부채가 잡히지 않는 렌탈 방식을 선호하는 셈이다.

신동석 서울시교육청 주무관은 “정부의 LED조명 보급 계획에 맞춰 사업을 진행해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조명 사업에 배정되는 예산은 거의 없거나 미미한 수준”이라며 “렌탈 방식에 대해 조명업계가 불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정부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공무원의 입장에서 부채가 잡히지 않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사후관리의 편의성도 장기 계약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다.

현재 발주되고 있는 사업 추진 기간은 최소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다. 결국 전기료 절감분 만큼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랜 기간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시행사가 즉각적인 사후관리에 나선다는 게 발주처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오히려 재정을 투입해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 조달 계약에 관한 법령 상 3년에서 최대 5년까지 보장하도록 돼 있어, 이후에 발생하는 제품 불량에 대해 속수무책이라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체 예산을 확보하고 재정사업으로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조달 구매 절차와 기준에 따라 제품을 구매해 설치했지만 최소 5년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업체의 말과 다르게 1년이 지나자마자 불량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며 “민원은 계속 들어오고 제품 하자 신청을 반복하다보니 차라리 렌탈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조명업계 “수익성 낮고 책임만 떠안아”

조명업계는 최근 시장의 흐름에 대해 업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갑질 행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정부가 무리한 사업 기간으로 업체의 사후관리 부담을 키우고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구조로 만든다는 주장이다.

렌탈 방식을 이용하면 대기업 렌탈사가 주관으로 입찰에 참여하기 때문에 낙찰 이후 중소 조명업체가 가져가야 할 수익을 나눠 갖게 된다.

업계에서는 자금 동원력이 있는 대기업 렌탈 회사가 높은 수익을 얻고 최소한의 마진만 남는 조명업체가 제품 설치 및 사후관리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정부가 구조적인 폐단을 만들어 내는 상황이라며 날 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또 경쟁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무상보증 기간도 논란의 한 부분이다.

서울시교육청과 도로공사의 가로등 ESCO사업 모두 10년 간 조명업체가 사후관리를 책임져야 한다.

조달 시장에서 조명 업체들의 일반적인 무상보증 기간이 3년에서 길게는 5년임을 감안할 때 터무니없이 긴 시간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또 렌탈 사업 방식이 이뤄지더라도 무상 보증 기간을 줄여야한다고 강조한다.

공공조달 시장에서 요구하는 3년에서 최대 5년까지의 무상보증 기간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후 기간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유지관리 비용을 일부 보전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체 대표는 “제품에 하자가 없도록 만들어 설치하는 것이 제조업체의 의무이지만 납득할 수 있는 보증 기간을 설정해야 이후 업체들도 재설치 과정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며 “정부는 업체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사업 설계 과정에서 사후관리 비용을 책정해 건전한 시장 생태계 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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