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경 한전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
이윤경 한전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

100년만의 폭염이라던 더위가 물러가자마자 아침저녁으로 쌀쌀함이 느껴진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난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가을을 재촉하는 바람에도 아직은 더위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지만 추위가 닥치면 힘들었던 여름은 까맣게 잊고 말지도 모르겠다. 올해 무더위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저 더운 수준이 아니라 건강이나 여건이 취약한 사람에게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자원의 소비, 온실가스 배출, 그리고 지구 온난화 등 지난 십 수 년 간 방송 혹은 기사로만 접했던 기후변화가 재앙이 돼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이 아무리 반복해서 경고하고 알려줘도 내게 직접 와 닿지 않으면 위협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근래의 급격한 날씨 변화는 지구가 온난화에 무심한 인류를 더 이상 기다려 주기 힘들다고 하소연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나라만 기후변화의 영향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재해강국이라 자부하는 일본도 잇따른 태풍과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캘리포니아의 산불은 해마다 반복되는 뉴스가 됐다. 또 세계기상기구는 지난해 대서양에서 17개의 열대성 폭풍이 발생했고 그 중 10개가 허리케인으로 변화했으며 6개는 강도가 카테고리 3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과거에 비해 허리케인이 점점 강력해지는 것은 지구 온난화 때문에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허리케인 발생면적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기후변화가 ‘변화’의 수준을 넘어 기후 ‘붕괴’가 돼가면서 날씨도 ‘변화’가 아니라 ‘재앙’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 기후변화는 전력산업에도 다양한 영향을 주는데 태풍 같은 재해로 시설물이 파괴돼 전력공급에 차질이 발생하기도 하고 전력수요에 영향을 줘 가격급등을 초래하거나 극단적으로는 공급전력이 부족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사례로 코네티컷, 메인 등 6개 주를 관할하는 미국의 ISO-NE(Independent System Operator-New England)에서는 지난 3일 오후에 실시간 도매 전력가격이 같은 날 아침보다 약 36배 폭등하는 일이 있었다. 이날은 월요일인 동시에 노동절(미국, 캐나다는 매년 9월 첫째 주 월요일)로 휴일이었기 때문에 전력수요가 급등할 이유가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당일 보스톤의 기온은 35℃ 정도였지만 습도가 높아 냉방수요가 급증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수요가 2400MW 정도 늘어났는데 하필 발전소 고장으로 약 1600MW의 공급력이 줄어들면서 시장 가격이 급등했다. ISO-NE는 비상조치로 뉴욕과 뉴브런스윅에서 전력을 조달했고 시장 참여자에 에너지 소비를 줄여줄 것을 요청했다. 다행히 대기 중이던 발전설비가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됐고 기온이 낮아지자 전력수요가 감소하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은 직접적인 생존의 위기라고 할 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영국과 네덜란드 연구팀이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인류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 이내로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데드라인을 산출했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 2℃ 이내 유지 목표는 지난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합의한 것으로 기온이 이보다 올라가면 폭염과 폭우, 한파, 슈퍼태풍 등이 크게 늘어 지구생태계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지켜야할 마지노선이다. 분석결과 전체 에너지에서 신재생에너지 점유 비율을 2%씩 매년 늘려가는 방식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경우 데드라인은 2035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소극적으로 줄일 경우 2035년이 지나면 어떤 방법으로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타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기후변화 재앙을 막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지 강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처럼 급박한 상황임에도 미국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완화에 이어 메탄가스 규제도 완화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에 대한 기여도가 21배 높은 온실가스다.

에너지산업 환경은 점점 더 변수가 많아지고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때문에 유틸리티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휘지 않는다고 했다. 에너지전환, 디지털변환도 결국은 이 모든 불확실성을 완화하려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온실가스를 가장 확실히 줄일 수 있는 열쇠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라면 우리에게 고민할 시간은 더 이상 없다는 점, 행동해야할 시간도 많지 않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데드라인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걷기보다는 뛰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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