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정치를 주장한 철학자 플라톤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반대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변질되어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이르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주장하는 철인에 의한 통치는 폐단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 대의제 민주주의로 나뉜다. 고대 그리스는 직접 민주주의이다. 고래 그리스가 직접 민주주의 라고 할지라도 여자와 노예는 빠졌다. 성인 남자가 정책 결정에 참여한 것은 통상 10%가 되지 않았다. 교통, 통신이 좋지 않았고 생업에 바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선거에서 투표율이 낮다고 하지만 고대 그리스 성인 남자의 직접민주주의 참가율보다는 훨씬 높다.

히틀러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바이마르 헌법을 반성한 2차대전 이후 현행 독일 Bonn기본법은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완전히 제거한 철저한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 법치주의, 자본주의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타고난 자질에 고도의 수련기간을 거친 철인이라 할지라도 개인적인 욕심과 모든 분야를 다 알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 시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한 가격 결정, 법의 지배를 통한 법적안정성, 예측가능성, 소수자보호 등을 추구한다.

그런데 지난 정부의 국정논단 사태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대통령은 탄핵됐고 신고리 5·6호기 건설여부도 숙의민주주의라는 이름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됐다. 전체 국민의 극소수에 불과한 공론화 위원들이 민주적 정당성이 있는가 하는 태생적인 비판은 별문제로 하고 공론화위원 구성 문제와 비용도 만만치 않다. 진보단체에서도 공론화위원 구성에 원전사고시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지역 주민의 비율이 낮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여부는 전 국민의 관심사인데다 돈의 문제가 아닌 주민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법적안정성, 예측가능성이 훼손되더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동의했었다.

그런데 부산시는 오페라하우스 건립여부까지 공론화로 결정한다고 한다, 건립비용 및 유지비용이 부산시 재정에 부담을 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의 신고리 5·6호기와 달리 비용 문제 때문에 공론화를 하자는 것이다.

쓰레기 소각장처럼 혐오시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이미 착공에 들어간 건축물까지 숙의민주주의로 재논의를 하자고 한다면 어떤 근거로 시민들의 선거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전임시장의 결정이 공론화위원들의 결정보다 못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공론화를 지지하는 측에서 주장하는 제대로 된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검토하자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말하지만 만약에 시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예측가능성, 소수자보호를 기본으로 하는 법치주의의 기본정신은 외면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또 부산시청 조직구성에서 오페라추진단은 이미 해산되었고 대부분의 부산시민이 제대로 오페라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현실에서 다수결의 원리가 적용되는 공론화 방식이 타당한가하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충돌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운영비 250억원 때문에 인구 350만의 부산에서 수익은 고려하지 않은 극단적인 근거로, 이미 착공에 들어간 오페라하우스를 숙의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공론화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라고 말하는 소수의 부산시민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부산시는 알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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