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지난해 주식대여 수수료만 259억원
청와대 게시판에도 대여금지 청원 내용 잇달아

삼성증권 배당 사고 사태를 계기로 무차입 공매도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돼 왔던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주식 대여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최근 국민연금공단에 ‘주식 대여와 무차입 공매도에 관한 공개질의 관련 자료’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고 5일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올해 초부터 국민연금의 주식 대여를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다수 올라왔으며 지난달 24일 올라온 청원엔 이날 기준 3만6119명이 동의 표시를 했다.

국민연금은 경실련의 정보 공개 요구에 대한 답변에서 지난해 기준 국내 주식과 채권 대여수익으로 259억원을 벌어들여 연금 재정에 충당하고 국내 경제에 이득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실련은 주식 대여가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로 고스란히 연결되는 불법 무차입 공매도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국민연금공단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경실련은 적립기금 규모가 634조원, 이중 국내 주식시장에서 130조원 규모를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대여 거래를 통한 수수료 수익을 얻기 위해 공매도 등 주식시장 불안감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기준 국내 주식 대여를 통해 연간 259억원의 수수료 수익을 거둬들였다.

경실련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대차를 받은 공매도 세력이 주가를 일정 수준까지 내리면 국민연금은 로스컷(loss cut, 손절매) 규정에 따라 매도해 공매도 세력에겐 수익을, 국민연금엔 손실을 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주요 기간산업에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적은 수수료 수익을 노려 자신의 살덩어리를 베어주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무차입 공매도는 금지돼 있지만 국민연금이 수탁처를 통해 무제한으로 주식 대여를 하고 있어 삼성증권 사태와 같은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무차입 공매도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마디로 국민연금의 대여 거래가 공매도를 활성화할 뿐 아니라 무차입 공매도까지 부추기는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올해 4월 삼성증권 배당 사고가 터진 이후부터 청와대 게시판엔 관련 청원이 무수히 올라왔다.

한 청원인은 “주식 공매도의 가장 큰 주역이 연기금과 우정사업본부의 주식 대여”라며 “매수 가격보다 낮게 공매도할 수 있도록 주식을 외국인과 기관에 빌려줘 낮은 가격에 팔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낮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청원인도 “투자한 회사의 주가가 상승해야 이익이 나는데 국민연금은 투자한 회사 주가를 끌어내리는 세력에 주식을 빌려주고 있다”며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국민연금 자금이 국민들의 희망을 빼앗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일본 공적연금(GPIF),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등 선진국에선 연기금의 대여 거래가 이미 금지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6년 권미혁 의원이 ‘국민연금의 주식대여를 금지하도록 하는 국민연금법 일부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경실련은 국민연금에 ‘공매도 잔고 상위 20개 종목의 주식보유 현황 및 주식대여 현황’에 대한 자료 공개를 재차 촉구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외에도 ▲종목별 주식 대여거래 현황 매월 발표할 의향 유무 ▲공매도 잔고 상위 20개 종목에 대한 국민연금의 기간 배당수익, 대차수수료 수입 및 지분평가액 비교자료, ▲보유비율 5% 이상, 주식대여 잔고 비율 1% 이상인 종목과 이에 대한 공시 여부, ▲최근 5년간(2013~2017년) 의결권 행사가 필요한 시점에서 주식대여에 대한 리콜 조치를 하지 않아, 축소된 의결권을 행사한 종목명과 대여주식 수 등 경실련이 요구한 자료에 대해 정보공개 관련 법률을 들어 공개를 거부한 상태다.

경실련 관계자는 “개인투자자들의 거래 비중이 절대적으로 많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들에게 전가된다”며 “국민연금은 무한 재대차와 위조증권을 찍어낼 수 있는 시스템 등으로 불법 공매도가 가능한 환경에서 주식 대여가 국가 경제와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매도란 주식이나 채권을 소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사하는 주문으로 개인투자자보단 외국인이나 기관 중심으로 사용되는 투자법이다.

보유하고 있지 않은 주식을 먼저 판 다음에 결제일이 오기 전에 시장에서 되사 대여자에게 반환하는 과정에서 차익을 얻는 방식의 무차입 공매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금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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