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기자는 블록쌓기 놀이를 좋아했다. 초등학생 무렵의 어느 생일날, 유명했던 블록 브랜드의 소방서 시리즈 제품을 사서 돌아오는 길은 아직도 기자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 1순위로 남아 있다.

어찌나 신이 났던지 동생과 함께 하루 만에 뚝딱 완성한 빨간 블록의 소방서는 조립설명서의 모습 그대로 꽤 오랜 시간 동안 방 한 켠에 ‘전시’돼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블록을 들여다보기만 했던 시간 동안 그토록 좋아했던 블록쌓기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블록을 쳐다보기만 해야 한다는 데 싫증이 났는지 불현듯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블록을 마음껏 쌓으며 상상속의 모양을 만들어보는 건데 블록이 무너지는 게 무서워서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에 속이 상했다.

동생과 ‘과감하게’ 소방서를 무너뜨렸던 그날 이후 전과 같은 모양의 소방서를 다시 만들지 못했다. 블록의 자리, 맞는 형태까지 달달외우고 있었지만 블록을 해체하면서 모두 잊어버렸다. 대신 더 오랫동안, 신나게, 지금까지도 블록쌓기를 즐기고 있다.

울산으로 내려온 지 3주째인 기자의 눈에 비친 영남권 에너지 공기업들은 어린시절 블록을 가지고 놀던 기자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힘겹지만 하나씩 블록을 해체하고 있는 기관도 있었고, 완전히 새 판을 짜는 곳도 눈에 띄었다. 중요한 건 속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에너지 공기업 모두들 이전의 틀을 바꾸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체질 개선을 준비 중인 에너지 공기업들의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본래의 목적을 잃지 않되 오류가 있다면 보완하고, 잘못은 인정하면서 고쳐나가면 된다. 분명한 사실은 새로운 모양을 만들려면 이전의 형태에 덧대는 게 아니라 새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블록쌓기가 재미있는 건 거대한 공룡도, 아늑한 집도 상상한 대로 만들었다가 언제든 부수고 다시 쌓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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