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김혜정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올여름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늘어나자 원자력계와 보수언론, 일부 야당은 전력예비율이 위태롭다며 탈원전 정책 흔들기에 나섰다. 산업부가 피크부하를 낮추기 위한 수요감축요청(DR)을 발령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전력예비율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이번 폭염을 탈원전 논쟁으로 촉발시킨 집단은 한국수력원자력이었다.

한수원은 폭염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7월 22일 느닷없이 여름철 ‘전력공급 총력대응’을 위해 피크기간 내 500만kW를 추가 공급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8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빛1호기 한울1호기 계획예방정비 착수시기를 전력피크 기간 이후로 조정하고 정비 중인 한빛3호기 한울2호기를 전력피크기간 전에 다시 가동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보수언론과 일부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력수요 늘어나자 허둥지둥 원전 더 돌린다’며 탈원전 정책 공세에 나섰다. 이미 밝혀졌지만 한수원의 보도자료는 거짓이었다. 한수원이 뒤늦게 두 차례에 걸쳐 계획예방정비 일정은 정부와 한수원이 4월에 결정한 것이고 정비중인 2기 원전 재가동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해명자료를 냈지만 보도는 이미 되고 난 다음이었다.

한수원발 오보기사 때문에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폭염으로 원전 정비 일정을 조정한 적이 없다는 해명자료를 두 차례나 냈다. 심지어 대통령도 ‘원전가동상황을 터무니없이 왜곡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산업부의 역할을 촉구하는 질책성 발언을 했다.

산업부와 대통령도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을 왜곡한 한수원 보도자료는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다. 폭염을 구실삼아 한수원이 자신들의 부실시공과 운영, 안전관리 부실로 발생한 원전 정비문제의 본질을 탈원전 정책 탓으로 떠넘기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원자력계는 원전 결함으로 정비 일정이 지연되는 문제를 탈원전 정책으로 중지된 것처럼 왜곡해왔다. 하지만 최근 계획예방정비가 지연된 원전 17기 중 11기는 격납건물 철판부식이나 콘크리트 공극, 증기발생기 내 이물질 문제 등으로 정비기간이 늘어났다.

지난 6월27일 감사원이 발표한 “원자력발전소 안전관리실태 감사보고서”내용을 보면 원전안전 관리가 얼마나 부실한지 충격적일 정도이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수원은 2016년 6월부터 한빛 2호기를 시작으로 격납건물 라이너플레이트(원전사고 시 방사능 유출방지를 막아주는 역할)의 부식이 국내 대부분 원전에서 확인되자 부적정한 측정방식을 도입해 안전두께에 미달하는 부식 부위를 축소했다. 그동안 한수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후쿠시마 사고 후속조치로 해안방벽을 높여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에 대비했다고 큰소리를 쳐왔다. 하지만 이번 감사원 감사 시 침수예방대책의 적정성 검토결과 고리원전의 최고 해수위가 17m로 분석됐지만 해안방벽을 10m 높이로 설치했고, 그나마 냉각수 취수펌프시설은 해안방벽 바깥에 방치했다.

국내 원전부지 중에서 고리부지는 자연재해에 취약한 곳으로 태풍과 집중호우로 여러 차례 원자로가 중지되는 사고가 있었다. 1987년 태풍 셀마 내습으로 해초류 및 대량의 오물이 냉각수 취수구로 유입돼 순환수 펌프가 중지되고 변압기 및 스위치 야드의 절연물에 염분 축적의 발생과 송전선로의 전압 급강하로 공급전원 순간 기능 상실 등의 문제가 동시다발 발생해 고리원전 1~4호기가 한꺼번에 정지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2003년 태풍 매미 때도 냉각수 취수구의 방파제 유실과 송전선로 고장, 운전지원용 통신설비 침수, 원자로냉각재 펌프가 중단돼 원전 4기 모두 정지됐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인 2014년 8월 집중호우 때에도 한수원의 부실시공으로 순환수 건물이 침수돼 고리2호기가 정지되는 사고가 있었지만 지금껏 해안방호벽조차 제대로 높이지 않았다.

경주·포항지진 이후 원자로 시설의 내진 성능을 강화했다는 기존 발표 또한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고리·한울·한빛·월성 원전의 발전시설 건축물 및 원자력관계시설 등 27개 시설이 내진설계가 반영돼 있지 않거나 내진안전성 검토를 위한 구조설계도서가 없어 내진성능 확인조차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내진설계 기준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시설도 59개나 됐다.

이외에도 감사원은 설계수명기간만료원전 계속운전제도 절차 불합리, 해외원자력안전기준 반영 불합리, 계획예방정비 작업항목 누락관리, 원자로 화재대응 부적정, 원전 종사자 안전관리 지도감독 부적정 등 총 15가지의 위법과 부당 등의 제도개선 사항을 밝혔다.

원자력안전규제를 책임진 원안위의 안전관리의 근본적 허점도 지적됐다.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면 현 정부가 내건 원자력안전을 국가존망이 걸린 문제로 대처하겠다는 약속이 무색할 지경이다. 현 정부에서도 한수원이 꼼수와 편법으로 원전안전 강화조치를 외면하고 탈원전 정책에 가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부 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다. 원안위를 대통령직속기구로 승격해 원전안전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사회적 논의도 없이 유명무실화하고 원자력계에 유화적인 대응을 해왔기 때문이다.

국민생명과 안전을 우선에 두는 정책의지가 구현되지 않으면 원자력계의 적반하장식 본질 흐리기 행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칼럼 내용은 본 신문사의 論調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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