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에너지전환으로 명칭만 바꾼 탈원전 정책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전력을 공급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적자의 늪에 빠졌다. 14일 발표된 한수원의 실적은 상반기 5500억원 순손실이다. 이유는 물론 가동률 저하다. 평균 80%인 원전가동률이 상반기에는 60%까지 떨어져 매출이 급감한 결과다. 한전에서 분사한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우량 공기업이 경영을 걱정할 정도의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국가가 주인인 공기업의 적자가 뭐 대수냐고 치부하는 것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얘기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1997년 12월, 우리는 처음으로 IMF로 불리는 외환위기를 겪었다. 비록 4년 만에 벗어나기는 했지만, 수많은 실직자와 신용불량자를 양산해 국가가 도탄의 위기에 빠진 적이 있다. 외환위기의 중심에 공기업의 심각한 부채가 있었다. 국가대표격 공기업인 한전의 부채가 100억 달러가 넘어서 도저히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빠져 국제사회에 손을 벌렸다.

문제는 사상 초유의 한수원의 적자 실적이 이번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에너지전환 정책을 고수한다면 피할 수 없는 결과라는 게 에너지업계의 입 모음이다.

사실이다. 고리원전 2호기 등 일부 원전을 제외하면 원전은 1기당 설비용량이 100만kW를 넘는다. 대용량의 전력을 생산하는 설비라 정기적으로(보통 18개월) 예방정비를 하고, 비정기적으로 부품들을 교체하는 등 수시정비가 필수적이다. 안전을 위해서도 결코 소홀할 수 없는 프로세스다. 이 비용이 연간 수조원이다. 적자가 이어지면 비용 마련도 문제지만, 직원들의 사기 저하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거의 모든 공기업이 복지혜택을 없애거나 축소했다. 소위 보너스로 불리던 성과급도 다른 공기업과의 상대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등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정책에 의해 적자를 냈지만, 그 결과는 고스란히 한수원 임직원들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적지 않은 경제학자들이 이대로 가다가는 제2의 외환위기도 남의 일이 아니라고 우려하고 있다. 물론 끝까지 기우로 남길 바라지만, 그런 조짐은 경제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어 걱정이다.

해법은 있다. 폭염을 겪으면서 정부 역시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솔루션이다. 에너지전환 정책의 궤도 수정이다. 이 정부 이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원전을 잘 운영하고 있는 국가의 표상이었다. 건설과 운영에 있어 세계 원전국뿐만이 아니라 원전을 신설하려는 비원전국가들에도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무조건 원전을 늘리라는 게 아니다. 원자력계 역시 원전 확대만을 부르짖지는 않는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포퓰리즘 단골 메뉴가 전기요금 동결 내지는 인하다. 억지로 눌러야만 가능한 일을 마치 정권의 성과인 양 포장해 왔다. 과거도 그랬고, 지금 역시 달라진 게 없다. 저유가 덕에 그마나 전기요금에 큰 손을 대지 않았을 뿐인데 말이다.

탈원전을 지속하는 한 싸고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한수원의 적자 때문이 아니라 국가의 지속성장을 위해 에너지전환으로 포장된 탈원전 정책은 빨리 수정해야 한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논의되고 있는 지금이 바로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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