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폭염이 문제다.’ 누진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자 방송에 출연한 한 전문가의 멘트다. 전기요금 누진제도가 매년 여름마다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여름철 냉방부하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에너지요금인데 겨울철 난방비에는 관대

최근 3~4년 사이 여름이 길어지고 무더위가 일상화 되면서 에어컨은 무더운 여름을 보내는데 필수품이 됐다. 일상적으로 에어컨을 틀고 살던 기간이 10일 이내였다면 최근 3~4년 사이 7월과 8월은 에어컨 없으면 살수 없는 환경이 됐다. 하지만 똑같은 에너지 요금 중 난방용 가스요금에 대해서는 전혀 말이 없다.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겨울철 난방비로 가구당 월 10만원을 훌쩍 넘기지만 여기에 대해선 관대한 것이다. 겨울철 난방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여름철 냉방에 익숙하지 않고 살아왔던 그동안의 생활환경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무더운 여름이 길어지면서 전기요금 누진제도 환경의 변화에 도마위에 오른 셈이다.

누진제도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은 지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이전해에는 전력이 부족하다보니 누진제도에 대한 불만은 있었지만, 그래도 수긍하며 더위를 견뎠다. 2015년 여름부터 불만이 폭발하자 그해 누진제도 적용에 따른 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요금을 인하했으며, 2016년 12월에는 누진제도를 대폭 완화해 현재 3배수 3단계를 하게 됐다.

전기요금 누진제도는 지난 1974년 12월 1차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에너지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시작됐다. 그 이전까지는 주택용은 단일요금 체계였다. 1974년 도입 당시에는 3단계 누진으로 요금 차이는 최대 1.6배로 비교적 큰 부담이 없었다. 그러다 1979년 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누진단계는 12단계 요금차이의 15.2배로 대폭 확대됐다. 이후 다소 완화됐다가 1995년 7단계, 13.2배로 조정됐다.

2005년 12월에 6단계, 11.7배의 요금제도가 완화돼 10년 넘게 지속되다 2016년 12월 현재의 3단계 3배로 대폭 조정됐다.

대부분 해외 타 국가는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대만, 일본, 미국 등 누진제를 적용하는 곳도 있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누진단계와 누진율은 부담이 안 될 정도로 낮다.

주택용에만 적용된 누진제, 형평성에도 어긋나

국민들이 누진제도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은 사용량에 따른 요금 오름폭이 높다는 것도 있지만, 왜 주택용에만 누진제도를 적용하느냐는 불만도 섞여 있다. 전체 전력소비의 13.4%밖에 차지하지 않는 주택용의 수요를 억제를 위해 누진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또 누진제도를 통해 주택용(108.5원/kWh)요금을 비싸게 받아 다른 분야를 지원하다는 교차보조에 대한 불만도 있다. 사실 산업용(107.4원/kWh)과 일반용(130.4원/kWh)의 판매단가는 주택용과 비슷하거나 높다. 때문에 교차보조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농사용(47.57원/kWh)은 매우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다.

현재의 전력판매 구조를 보면 누진제도를 통해 도입 당시 얻으려 했던 에너지 수요억제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때문에 이제는 누진제도를 폐지해야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누진제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도입 당시보다 많이 퇴색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누진제도를 폐지할 경우 주택용 에너지는 급격한 전기화(化)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누진제 개편 불가피…연료비연동제 등 고려해봐야

전력분야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주택용의 비중이 낮은데, 누진제 개편은 전기화를 앞당길 수 있다”며 “가스난방 및 취사가 편리한 전기로 빠르게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누진제도 개편·폐지를 시작으로 전기요금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면 전력구입비 연동제와 전압별 요금제도의 도입도 고려해 볼만하다.

연료비연동제도는 2011년에 도입이 적극 검토됐지만, 국민들이 전기요금 인상으로 체감할 수 있다며 기재부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전기생산원가 중에서 원자재 가격의 비중이 80% 이상 되는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때나 배럴당 50달러 때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전기요금이 같다는 것은 심각한 가격 왜곡 현상을 가져온다.

또 전압별요금제도입도 고려해볼 수 있다. 고객이 사용하는 전압에 따라 구분하고 전압별 공급원가를 기준으로 요금을 적용하는 구조다. 전기요금 원가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전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전압별요금제도를 하면 원가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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