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 유일하게 모래사장이 있는 ‘리도섬’

다음날은 아침 일찍 부라노섬으로 갔다. 브라노는 생각 만큼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고기 잡으러 나가는 어부들이 안개가 끼었을 때도 잘 보이라고 모든 건물들을 채도가 높은 색으로 칠해놓아 한국의 CF에도 자주 등장하여 많이 알려진 섬이다. 원래 가려고 했던 레스토랑은 일요일이라서 휴무다. 다른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토르첼로 섬으로 향했다. 이번 베니스 여행의 가장 큰 목적지는 토르첼로 성당의 금빛 모자이크를 보는 것이 목표이다.

이곳은 매립지가 아니고 그냥 섬이어서 토르첼로 성당의 모자이크가 습기에 변색이 되지 않은, 무척 아름다운 상태로 남아있다. 샤넬이 토르첼로 성당의 모자이크를 좋아하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기에 온 것이다. 토르첼로 섬에 도착해서 성당으로 가는 길에 ‘Diana Wang’ 이라는 이름의 퇴직한 말레이시아 여자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아티스트 레지던스와 토르첼로 성당도 함께 보았다.

토르첼로 성당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마치 예전의 성 바실리카 성당의 모자이크를 보았을 때의 감동이 되살아 났다. 나에겐 무엇보다도 가브리엘 샤넬이 특별히 좋아했다는 것이 더 의미가 있었다. 성당 가는 길에 한 레스토랑을 보았는데 Diana Wang 이 유명한 곳이라 한다. 돌아오는 길에 자세히 보니 그 유명한 치브리아니였다. 깜짝 놀랐다. 오래전 서울에서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일치프리 아니 레스토랑의 남경묵 세프가 청담동의 안나비니에서 스카웃되어 일할 때 자주 가곤 했는데, 그때 그에게서 베니스의 유명한 치프리아니 레스토랑의 이름을 본따 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언젠가 베니스에 가면 꼭 한 번 들러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외진 곳에 치프리아니 레스토랑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곳 토르첼로의 치프리아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느냐 마느냐, 즉 한 끼 식사를 위해 9월 말의 스산한 섬에서 아무 할 일도 없는 채로 혼자 남아 저녁때까지 기다렸다가 식사를 하고 가느냐, 아니면 포기하고 그냥 밝을 때 이대로 돌아가느냐…Diana Wang 과는 맥주 한 잔 마시고 이미 헤어진 다음이다.

토르첼로 섬은 낮에 성당 구경을 하러 다니는 외지 사람들이 잠시 보일 뿐이고 그 밖의 시간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적막한 섬이다. 기다릴만한 적당한 카페도 주변엔 없다. 잠시 생각 후 마침내 어려운 결정을 했다. 식사를 하고 가기로! 성당 구경을 마친 시각이 오후 5시경인데 저녁 식사는 7시부터라고 한다. 9월 말은 해도 일찍 떨어진다. 내가 기다릴 수 있는 곳은 배가 정박하는 대기소 뿐이다. 꼬박 2시간을 혼자서 기다렸다가 식당을 들어갔다.

유럽의 유명한 현지 레스토랑들은 느지막한 시간에 식사가 시작된다. 내가 식사를 끝낼 때쯤인 늦은 시간에 한 커플이 식사를 하러 들어왔다. 레스토랑은 근사 했다. 아마도 가브리엘 샤넬도 토르첼로 성당을 다녀가면서 이곳에 들러 식사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정원도 멋지고 정원에서 툭 꺾어다 꼿은 흑장미도 예술 그 자체였다.

가브리엘 샤넬이 많은 사진 기록을 남긴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1936년에 그녀가 베니스의 리도섬에 있는 사진을 본적이 있다. 그녀는 베니스에 와서 다시 활력을 얻었다고 한다. 리도섬에 도착하여 해변으로 걸어갔다. 섬은 지도에서 보면 마치 기다란 칼처럼 생겼다. 해변 쪽으로 걸어가는데 뿌연 안개 같은 게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바람 때문에 생긴 모래 먼지였다. 사막처럼 모래 먼지가 일었다. 얼마 후 바람은 가라앉았고 나는 해변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몇 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 로마 다빈치 공항을 경유해서 서울로 돌아왔다.

지난 4일 동안 베니스의 본섬뿐만 아니라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샤넬이 베니스에서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자료는 별로 많지 않다. 다만 그녀가 수없이 많이 남긴 사진에서 베니스의 여러 곳이 배경으로 나오고 그중엔 리도섬도 나온다.

오늘은 5일 동안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 비행기편으로 베니스에서 로마를 경유하여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9월의 청량한 아침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리도섬으로 가는 배를 탔다. 이곳은 베니스의 본섬과 달리 육지로 된 섬이기 때문에 자동차도 다니고 버스도 다닌다. 그리고 베니스에서 유일하게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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