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20만명. 일본에서 출산 후 퇴직하는 여성의 수이다. 이들의 경제생산력을 수치화하면 국내총생산(GDP) 기준 약 1조2000억엔(한화 약 12조원)에 달한다. 그야말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일본 제일생명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첫아이 출산 후 직장을 그만둔 일본여성은 33.9%에 달한다. 인구고령화로 인해 노동력 감소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일본의 노동현실의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여성 인력의 감소는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일차적으로는 경력 단절로 인해 일과 가정을 양립할 기반이 상실됨에 따라 여러 사회 문제를 양산하는 한편,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득에 따른 소비와 납세 감소 등에 따른 경제적인 손실까지 동반해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준다. 일본이 뒤늦게 대책 마련에 분주한 까닭이다.

한국의 현실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침체와 고령화의 영향으로 일자리를 찾는 중년 여성 구직자들이 증가하고 있으나, 정작 이들이 발붙일 곳은 마땅치 않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 아르바이트를 찾는 이들만 늘어나고 있다.

아르바이트 포털 사이트 알바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구직활동을 한 이들의 이력서를 분석한 결과, 40대 아르바이트 구직자 중 여성 비율은 76.8%로 압도적이었다. 50대 여성의 구직 비중도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58.8%에 불과했던 50대 여성 구직자 비중도 지난해 68.4%, 올해 상반기 70.6%까지 증가했다.

경단녀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자 현 정부도 지난달 5일 출범 이후 최초로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많다. 전 정부 정책 대상자를 확대하거나 지원 금액을 인상하는 등 일부 변화만 있을 뿐 정책의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최근 균일가 생활용품숍 아성다이소는 결혼과 육아로 직장 경력이 단절된 ‘경단녀’를 우선 채용하겠다고 밝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구직 의욕이 있는 이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자, 실제로 기업의 성장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한다. 대다수 기업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며 경단녀 고용을 기피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러한 방침은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국내 경제에도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단녀의 단절된 경력을 이어주는 것은 특정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 동력을 잃은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또 다른 비기(祕器)가 될 수 있다. “경단녀를 모십니다.” 이 말이 우리 경제 곳곳에서 더 자주 들려오길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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