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급 제품이 있다면 당연히 구매해야죠.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전구가 2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고장이 나서 구매하러 왔습니다. 저는 중국산이라서 금세 고장이 난 줄 알았네요. 하지만 효율등급제에 관한 설명을 들으니 제품마다 수명과 성능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소비자들에게 좋은 정책인데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보통 이전에 있던 재고가 다 소진되고 새롭게 생산된 전구가 시장에 유통되기까지는 빨라도 생산 시점 이후 3개월이 걸려요. 4월 1일부터 제도가 시행됐다면 아직까지 시장에 풀릴 시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도가 바뀐 경우에는 업체들이 미리 재고를 쌓아두는 경향이 있어 본격적인 판매가 이뤄질 시점은 미지수네요.”
지난 4월 1일 컨버터 내·외장형 LED램프가 기존 고효율에너지기자재에서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로 이관됐다. 에너지공단은 시장 도입기부터 LED램프의 효율과 역률 등 해당 기술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효율에너지기자재에 해당 품목을 포함시켜 왔지만, 기술 수준이 상향평준화되면서 효율등급제로 관리 체계를 변화시켰다.
하지만 등급제 시행 이후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대부분의 소비자는 제도가 시행됐는지 조차 모르고 있고, 현장에서는 등급이 표시된 제품이 판매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 제조 제품조차 찾기 힘들어…제조연월 ‘확인불가’
최근 4월 1일 이후 생산된 LED램프를 찾기 위해 대형마트와 을지로 도매상가 등에서 판매되고 있는 조명을 확인해 봤지만, 우선적으로 제품 외부에 제조연월을 확인할 수 있는 라벨이 부착돼 있지 않았다.
한 대형 A마트에 방문한 결과에서도 같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번개표·탑룩스·필립스·러빙홈·오브라이트·이마트자체브랜드 등 40여 종의 LED 제품 중 제조연월은커녕 제조연도도 보이지 않았고, ‘별도표기’ 혹은 ‘제품표기’라고 명시돼 있었다.
그나마 한 제품에서는 ‘제조연월은 알파벳으로 표기돼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제조연월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었지만, 정확한 판단을 위해선 포장을 뜯어 제품에 표기된 사항을 살펴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결국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서는 제조연월을 확인할 수 없었다.
제품을 구매해 확인한 결과 제도가 시행된 지 4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제품도 4월 1일 이후에 제조된 것이 없었고, 효율등급제 라벨이 붙은 제품 또한 찾을 수 없었다.
을지로 조명거리에 전시돼 있는 조명도 마찬가지였다. 을지로3가역에 위치한 한 조명 업체를 방문해 상점주인에게 올해 제조된 LED램프가 있느냐고 묻자 대뜸 “당연히 있다”고 대답했지만, 해당 상점에서 가장 최신 상품은 2017년 제조된 제품이었고, 제조연월 확인이 가능한 대부분의 상품이 2015년쯤 제조된 것들뿐이었다.
◆“LED램프 효율등급제 포함 몰라”
해외 조명 제품을 취급하는 전문 마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당 마트를 찾은 김모씨(30)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집안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조명을 교체할 정도로 실내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등급제 시행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김 씨에게 에너지효율등급제가 LED제품 포장에 필수적으로 표기돼야 하는지 알고 있었냐고 물어보자 “에너지효율등급제는 냉장고 같은 비교적 큰 백색가전에만 적용되는 줄 알고 있었다”며 “LED램프에 대한 에너지효율등급제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소비자는 물론 판매자도 이에 대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을지로3가 조명 거리 한복판에 있는 조명업체의 한 사장은 등급이 붙어 있는 LED램프를 사고 싶다는 문의에 “그런 거 없다. 이 제품이 이틀 전에 발주해 받아온 제품이지만 그런 내용이 전혀 없지 않느냐”며 “구매하러 온 분이 잘못 알고 온 것”이라고 단호한 반응을 보였다.
마트에 LED 전구를 사러 온 고객들도 조명을 고르는 과정에서 제조일자나 등급을 유심히 보지 않는 모습이었다. 효율등급제에 관한 내용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한 고객은 “조명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LED램프도 등급제가 시행됐다는 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며 “정부에서 정책이 시행됐다면 대형마트를 비롯해 홍보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제도는 시행, 정착은 언제?
효율등급제는 4월 1일 시행됐지만 제도 정착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미지수다. 자동차나 냉장고, 에어컨 등과 같이 고가격대의 제품과 다르게 제조단가가 낮고 수입 비율이 높은 LED램프의 특성이 가장 큰 이유다.
효율등급제 시행에 앞서 일부 제조사와 수입업체들은 수십만 개 제품을 미리 제조해 비축하는 등 실질적으로 제품이 판매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제도에 대한 홍보 부족도 문제점 중 하나다.
현재 LED램프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물론 대형마트와 을지로 조명 상가, 소규모 판매점 등 판매처에서도 LED램프의 효율등급제 시행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에너지공단은 예산 한계 등을 이유로 홍보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어 지속적으로 제도 시행에 대한 홍보를 이어가야 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4월 1일에 맞춰 1등급 LED램프를 출시하고 자체적으로 광고와 협찬 등을 통해 홍보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대부분 제도가 시행된 것조차 모르는 상황”이라며 “공영 방송과 소비자 대상 마케팅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제도를 알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정착을 위한 사후관리방안도 마련돼야 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LED램프를 제작하는 업체들의 대부분은 단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제작한 후 수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법·불량 제품이 컨테이너 째로 대규모 수입되거나 시험 기준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제품이 유통되는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효율등급제를 시행하더라도 불법·불량 제품과 기준 미달 제품을 제재할 수 있는 강력한 사후관리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결국 고등급 제품을 만들기 위한 업체의 부담만 가중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에너지공단은 사후 조치에 관한 내용은 내부적으로도 필요한 조치를 마련한 상태이며 무분별한 판매가 이뤄진다면 관련 절차에 따라 제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에너지공단 관계자는 “제도 시행 이후 불법·불량 제품과 기준 미달 제품이 시장에 유통된다면 판매 금지와 과태료 부과, 인증 취소 등 단계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며 “업계에서 강력한 사후관리를 원하는 점을 알고 있지만 예산이나 인력의 한계가 있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