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두영 (주)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허두영 (주)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왜 우리만 요즘 것들을 알아야 하나요?” “요즘 것들도 우리를 알아야 하지 않나요?” “기성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책도 있으면 좋겠어요.” 필자가 강의 현장에서 기성세대에게 종종 듣는 얘기들이다. 소통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 이해가 필요하다. 어느 한 편에서 일방적으로 배려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적록색약자이다. 신호등의 빨간색과 초록색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평상시에는 별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가끔 난감한 순간이 있다. 우천시 야간 운전을 할 때다. 다른 세대를 모른다는 것은 마치 특정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색약과 같다.

각 세대는 그들의 특성만큼이나 색깔이 다양하다. 그래서 그들의 서로 다른 색깔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기성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가 마음을 먹는다면 기성세대를 이해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 기성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요인을 알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의 생애주기에서 영향을 미친 세 가지 주요 요인을 살펴보자.

첫째 요인은 ‘부모’이다. 전통 세대는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보릿고개를 지나면서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살갑게 돌보기는 만무하고 방치하다시피 했다. 적어도 자녀가 너덧 명은 됐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들의 자녀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나 X세대는 부모님 하면 친근하기보다는 엄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특히 아버지는 대하기 어려운 권위적인 존재였다. 선생님께 호되게 매를 맞았어도 부모님께 하소연할 수 없었다. 또한 부모님으로부터 가부장적인 서열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예컨대 세뱃돈도 나이순으로 달랐고, 하다못해 과자 선물세트를 나눠 가질 때도 공평하지 않았다.

둘째 요인은 ‘자연’이다. 1960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80달러였다. 당시 3000달러이던 에티오피아에도 훨씬 못 미칠 정도로 가난했다. 1960년대에 농업, 어업 등 1차 산업 종사자가 전 국민의 80%가 넘었다. 당시 기억 속의 부모님들은 대부분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었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하나같이 산, 들, 강으로 튕겨 나갔다. 지금처럼 컴퓨터나 게임기가 없던 그 시절, 자연이 유일한 놀이 공간이자 학습장이었다. 여름은 햇볕에 그을려 살갗이 두세 번은 벗겨져야 지나갔고, 겨울에는 손발이 트고 동상이 걸리기 일쑤였다. 디지털 감수성이 강한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에 비하면 기성세대는 ‘자연’의 영향이 큰 탓에 아날로그적인 향수가 강하다.

셋째 요인은 ‘시대’이다. 인도 속담처럼 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닮는다. 밀레니얼 세대가 젊어서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한 것처럼, 기성세대는 젊은 시절에 각각 다른 산업혁명을 경험했다. 전통 세대는 기계화의 1차 산업혁명, 베이비붐 세대는 대량생산의 2차 산업혁명, X세대는 지식정보의 3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젊을 때를 보냈다. 칼로 무 자르듯 구분하기는 그렇지만 얼추 맞아떨어진다. 다른 나라에서는 100~200년은 족히 걸린 일을 우리는 50년도 안 돼 경험한 것이다. 이는 압축 성장만큼이나 세대 간의 생애주기 경험이 달랐다는 얘기이다. 이런 배경에서 이해하자면 우리나라의 세대 차이나 세대 갈등은 어쩌면 당연하다.

기성세대에 영향을 미친 세 가지 요인을 살펴보았다. 각각의 요인들을 이해하면 기성세대가 보이는 특징을 공감할 수 있다. 젊은 세대와 비교해 기성세대가 서열주의가 강하고, 칭찬보다 질책에 익숙하고, 특권의식보다 주인의식이 강한 이유는 부모의 영향이다. 능력도 좋지만, 혈연, 지연, 학연의 연고를 따지고, 관계 중심적인 것은 자연 가운데서 집단을 이루며 뛰어놀던 영향이 크지 않을까? 경험보다 소유,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고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대를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비판적인 시선으로만 볼 게 아니라,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기성세대도 버릇없고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이 있었다. 지금 젊은 세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성세대가 될 것이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한 얘기에 귀 기울여보자. “영혼은 늙게 태어났으나 젊어진다. 이것이 인생의 희극이다. 육체는 젊게 태어났으나 늙어간다. 그것이 인생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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