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후, 마감에 허우적대는 일상을 깨우는 폰 알림소리.

‘00은행 대출금리 변경안내. 변경 후 금리: 2.51%(기준 1.83+가산 0.68), 문의: 고객센터’

대출금리 변경안내 문자였다. 한눈에 봐도 불친절하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가 오른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한 달 전에 받은 안내 문자를 겨우 찾았다. 지우지 않고 놔두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뺄셈을 했더니 0.17%p가 나온다. 한 달에 이자가 얼마나 오를지 대충 암산을 해보다 짜증이 확 밀려온다. 이럴 때마다 매번 찾아오는 무기력함은 덤이다. 피할 수 없는 대출자의 운명이랄까.

말이 나온 김에 은행 얘기를 좀 해보자.

금융감독원은 최근 9개 은행의 대출금리 산정체계를 검사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지난 5년 동안 대출자 소득을 고의로 누락하거나 축소 입력한 사실상 ‘금리 조작’ 행위가 수두룩했다.

적발된 건수는 총 1만2300건에 달하고 KEB하나은행, 한국씨티은행, 경남은행이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액은 모두 27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와 관련, “해당 은행은 내규위반 사례의 고의성, 반복성 등을 엄격하게 조사해 필요한 경우 임직원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19개 은행은 지난해 순이익 11조2000억원을 실현했다. 2016년 보다 4.5배 증가한 수치다. 2011년(14조4000억원) 이후 최대 규모다. 매우 뛰어난 실적이다. 이자이익은 37조3000억원으로 전년보다 2조9000억원이나 상승했다.

이익의 대부분은 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 즉 예대(預貸)마진 덕분이다. 지난해 대출 평균금리는 3.23%. 예금 평균금리는 1.20%로, 예대금리차는 2.03%p나 됐다. 2016년 1.95%p에서 더 벌어졌다. 올해도 이런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이자놀이’로 떼돈을 번 은행들은 지난해 말 두둑한 성과급 잔치로 휘파람을 불었다.

은행들이 앉아서 차곡차곡 돈을 버는 동안 가계는 이자 부담으로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다. 올 1분기 가계부채는 1468조원으로 사상 최대치고 가계 소득에서 원리금 상환 부담의 비중도 5년래 최대다. 부채 증가율은 소득증가율의 두 배를 넘는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은, 과거 은행들이 부실대출이나 방만한 경영 등으로 문 닫을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들의 생명줄이 된 것은 국민이 낸 세금이었단 사실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1997년 11월부터 정부가 국내 기업에 지원한 공적자금은 168조7000억원. 이 중 은행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무려 86조9000억원으로 압도적 1위다. 지금 존재하는 상당수 은행에 국민의 혈세가 투입됐고 이 덕에 살아남았다는 의미다.

이쯤되니 막대한 공적자금을 산소호흡기 삼아 기사회생한 은행들, 예대마진으로 순이익을 늘려가는 은행들, 급기야 금리까지 조작한 은행들을 언제까지 신뢰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혈세의 가치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행태를 우리는 ‘도덕적 해이’라 부른다. 은행의 이익은 주주와 임직원들의 몫이지만, 부실 은행은 국민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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