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준 ‘베라・미시아 세르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성바실리카 성당의 종탑에서 내려다본 본섬 전경.
이탈리아 베니스의 성바실리카 성당의 종탑에서 내려다본 본섬 전경.

가브리엘 샤넬의 인생에서 커다란 영향을 준 여자친구들이 많겠지만 크게 보면 2명의 친구가 있다. 한 명은 대단한 미인이라고 알려진 영국 귀족 출신의 베라, 다른 한 명은 미시아 세르다.

미시아 세르는 파리의 사교계에서 단연 스타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을 보면, 로트렉, 르누아르, 에드워드 발랑 등. 가브리엘 샤넬은 살아 생전에 연예인이 아닌 여자들 가운데 사진을 가장 많이 남긴 사람으로 손에 꼽히고 지금의 안목으로라도 그녀의 사진은 대단한 수준이다.

그런데 샤넬의 친구 미시아 세르는 그녀를 그린 초상화가 수도 없이 많았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당대의 사교계에서 두명 다 보통 유명한 스타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나라마다 좋아하는 고전음악이나. 화가가 약간씩 다른데 일본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은 비발디의 사계이고 한국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의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마리 로랑셍’이라는 화가를 국민적으로 좋아하고 마리 로랑셍 갤러리가 있다고 하는 이야길 들었다.

가브리엘 샤넬은 그녀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다가 작품을 보고 인수를 거부했다고 알려진 유명한 유화작품이 파리의 ‘오랑 쥐 갤러리’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파리로 가는 길에 찾아가서 볼 생각이다.

가브리엘 샤넬은 마리 로랑셍의 그림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고 그때부터 생각한 것 같다. 그 후로부터 정말 대단한 사진작가의 사진을 많이 남겼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가브리엘 샤넬이 그만큼의 돈을 지불하고 자신의 사진을 남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친구 미시아 세르는 화가들이 그녀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는 것 역시 화가들을 많이 후원했거나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주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가브리엘 샤넬이 연인 보이카펠을 교통사고로 잃고 엄청난 시름에 잠겨있을 때 샤넬에게 베니스로 여행을 가서 기분전환을 하자고 조른 친구가 미시아 세르 부부다. 미시아 세르는 샤넬과 친분이 있던 파리의 명사이자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이며 아티스트 남편과 함께 가브리엘 샤넬에게 영감을 주고 모든 창작에 격려와 자극을 주는 원동력이었으며 샤넬과 가장 친한 친구이자 모든 예술가들의 뮤즈였고 본인 역시 예술가였던 여성이다. 그런 그녀와 절친이 되면서 샤넬은 예술가들과 가까워지고 예술가들을 후원하게 되고 예술을 패션에 접목시키는 디자이너로 성공하게 된다.

미시아 세르는 1872년 러시아 상트 페테르브르크에서 태어나고 1950년 프랑스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베니스를 몇 번 다녀오기는 했지만 늘 아침에 갔다가 저녁엔 그곳을 빠져나오는 그런 여행을 하면서 언젠가는 며칠동안 이 섬에 머물면서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베니스는 개펄 위에 나무를 박아넣어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린 구조다.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고 아름답기가 열 손가락에 꼽을 만한 이곳은 성수기에 방을 구하는 일이 돈을 떠나서 시쳇말로 ‘취직하기’보다 어렵다고 회자되던 곳인데 요즘은 인터넷 예약 덕분에 열심히 찾으면 그나마 방을 구할 수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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