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직장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임금 수준과 사회적인 명망 등이 제1의 가치였던 과거와 달리, 최근 들어서는 적절한 노동 강도, 개인시간 확보 등이 중요한 판단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탄생한 신조어가 ‘워라밸’이다.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을 뜻하는 이 말은, 달라진 요즘 세대들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돈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먹고사니즘’ 등장 이래 노동이 개념이 ‘삶의 질 개선’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일선 기업들에선 달라진 문화를 반영해 직장 내 워라밸 구현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일부 기업들은 PC 셧다운제를 도입해 직원들의 조기퇴근을 장려하고 있다. 워라밸의 핵심 조건이 바로 ‘시간’임을 보여주는 방증들이다.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근로시간 단축제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오는 7월 1일부터 직원 300인 이상 사업장, 공공기관에 우선 적용되는 이 제도는 주당 근로시간을 현행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까지 단축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데 방점이 찍혔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멕시코·코스타리카에 이어 연간 근로시간이 길다는 오명을 씻어내겠다는 의도다.

반면 제도가 채 시행되기도 전부터 산업계 곳곳에선 반발하는 목소리가 연일 터져 나온다. 사업주들의 부담 증대는 어떻게 막을 것이며, 정부 지원금의 재원 마련 방안은 무엇인지, 온통 시행 후의 부정적인 결과들에만 초점이 맞춰진 반론들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를 어떻게 끌어안을지, 일과 삶의 균형은 어떻게 맞춰나갈 수 있을지, 현 시점에 필요한 유의미한 고민들에 대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근로시간 단축제도 도입이 압축성장과 경쟁논리에 매몰된 우리나라의 노동문화를 단번에 바꾸는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러 근본적인 병인들 중에서도 ‘시간’만큼 처방 시 즉효를 낼 수 있는 요인이 있을까. 대안 없는 투정을 들어주기엔 우리의 노동 문화는 너무 멀리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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