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티, 다양한 기술로 주민들에게 맞춤형 서비스 제공하는 것”
“4차 산업혁명, 실체 없는 개념 아냐…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과정”

대학 교수, 그리고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쓴 대중과학자이자, 유명 방송인.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에게 따라붙는 수식이다.

근래 들어 케이블채널 tvN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정 교수는 학자로서 꾸준히 자신만의 영역을 다져온 뇌과학 분야 전문가다. 지난 15년간 인간 뇌의 의사결정, 정신질환자의 뇌 모델링, 뇌·기계 인터페이스, 뇌기반 인공지능 등 관련 분야를 두루 섭렵해왔고, 또 현재 한국계산뇌과학회장으로 다수의 논문상을 수상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올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정부가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스마트시티 시범도시 중 한 곳인 세종 5-1 생활권의 마스터플래너(MP)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국가 핵심 사업의 전면에 서게 된 부담도 적지 않을 터. 하지만 그는 특유의 넉살 좋은 미소를 띠며 자신이 이 직책에 최고 적임자라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전문가로서 다양한 분야의 융·복합을 삶으로 실천해온 그이기에 내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다.

뇌공학자가 그려나갈 스마트시티는 어떤 모습일까. 또 전 세계를 강타한 4차 산업혁명 흐름 속에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모든 질문의 중심에 선 그에게 길을 물었다. (편집자 주)

▶원래부터 유명인사이기도 했지만 방송 이후 큰 화제가 됐다. 전례가 없던 일이었던 만큼 출연까지 고민도 많았을 듯한데.

“예능의 힘을 실감했죠, 하하. 부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한 데 모여 자연스레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 끌렸어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대화하면서 ‘하나의 사안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라볼 수 있겠구나’ 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죠. 시청자분들도 그런 부분에 흥미를 느끼신 듯합니다. 제 자신에게도 무척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고요.”

▶여러 분야의 융·복합 전문가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졌지만, 일각에선 이번 스마트시티 MP 선정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오더라. 아무래도 스마트시티가 정부가 힘을 많이 준 사업이다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반응은 그간 국내에서 ‘도시’를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봅니다. 도시계획을 건설·토목의 관점에서만 보면 제가 부적합하다고 보실 수도 있죠.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도시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해 줄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런 흐름에서 4차 산업혁명 기술이 거론되는 것이고요.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도시를 디자인하고, 계획하는 것. 그 최종 목표점이 바로 스마트시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스마트시티가 정확히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스마트시티를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스마트시티는 본질적으로 도시의 사람들, 주민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것을 AI로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기술을 통해 그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솔루션인 거죠. 그래서 도시계획은 서비스와 기술, 이 부분을 모두 고려해 이뤄져야 합니다.”

▶정부는 일찍이 시범도시를 ‘백지상태의 스마트시티’로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정부가 굉장히 과감한 선택을 한 거죠. 사실 도시 설계만 놓고 보면 건축설계사무소가 참여하면 될 문제입니다. 중요한 건 ‘어떤 철학으로 시민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인가’ 하는 부분이죠. 그래서 ‘다양한 기술들을 도시의 적재적소에 넣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스마트시티의 마스터플랜을 짜봐라’ 하는 차원에서 제가 MP로 선정된 것이고요. 저도 연구실을 벗어나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사업을 마지막까지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무척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기대감도 큽니다.”

▶앞서 2017년부터는 중국의 웨이팡시 샤산 생태지구에서 헬스케어 기술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시티 사업의 MP로도 활동하고 있다. 국내 시범도시도 MP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방향성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다를 것 같다.

“중국은 전국에 500개 스마트시티를 구축하는 계획을 추진 중인 데 모든 도시가 저마다 테마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맡은 웨이팡시는 헬스케어가 중심입니다. 최첨단 의료시스템을 도입해 마치 도시를 ‘거대한 요양원’처럼 만드는 것이죠. 다만 그곳은 일자리, 교통 등이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계획은 단순한 편이에요. 하지만 세종시는 훨씬 더 복잡합니다. 구도심과 새로 구축될 스마트시티가 있는데 데이터는 구도심으로부터 얻어야 하고, 일자리·교육 문제도 풀어야 하는 난점이 있죠. 또 교통 측면에선 자율주행자동차, 드론택시 등의 도입을 최초로 시도하는 것도 의미가 크죠.”

▶구체적인 방향성은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세종시만의 문제를 풀려고 스마트시티를 만든다면, 다른 도시로 결과물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정부가 시범도시로 선정한 이유가 없어지는 거죠. 그래서 이곳의 결과물을 다른 도시에 적용이 가능토록, 보편적인 도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겁니다. 또 기업의 참여도 유도할 겁니다. 시범도시의 핵심 기능이 ‘테스트베드’라서 주민들의 참여 못지않게 기업의 참여가 중요하죠. 예컨대, 기업이 기술을 시험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암호화폐 코인을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순환고리를 만들어서 기업은 기술·서비스를 테스트해 해외로 수출하고, 주민들은 기술 도입에 따른 혜택을 얻고, 궁극적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는 스마트시티 플랫폼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스마트시티 구현에 기술이 중요하단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2016년에 ‘4차 산업혁명’이 처음 발표됐을 때보다 점점 구체화된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2009년에 다보스포럼 ‘차세대 글로벌 리더’에 선정돼 발표 전 논의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어요. 발표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리더 그룹 내에선 부정적인 인식이 더 컸던 게 사실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시대다’라는 게 이유였죠. 빅데이터, IoT, 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구현을 위한 기술이 완비되지 않았을 때니까요. 하지만 발표와 같은 해에 벌어진 바둑 프로기사 이세돌과 AI 알파고의 대결이 인식의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이지만,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많은 것들이 변하겠구나’ 그런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싹튼 것이죠. 물론 역사의 흐름으로 볼 때 1~3차 산업혁명이 과거를 되짚어보며 시기를 규정해온 것과 달리, 4차 산업혁명은 오지 않은 시대를 미리 선언했다는 차이점은 있죠. 그러나 관점을 바꾸면 시대를 미리 규정함에 따라 우리는 새 시대로 진입할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개념이 구체화됐지만, 여전히 4차 산업혁명 시대로 가기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실체가 없다거나, 모호한 그런 비현실적인 담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비스적인 측면에서 보면 방향성이 분명하죠. 다른 나라들은 이미 시도했거나 시도 중인데, 우리만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죠. 우버, 에어비앤비, 블록체인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현실세계를 온라인상에 그대로 올려놓는 사이버물리시스템(CPS), 디지털 트윈 등의 기술을 활용한 기술들입니다. 국내에서 하기엔 현실적으로 여러 장벽들이 있다 보니, 그러한 고민 속에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한 스마트시티란 개념이 나오게 되는 거죠.”

▶기술 혁명이 불러올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도 크지만 일자리 감소 등에 대한 불안감도 상존한다.

“4차 산업혁명은 단시간 내 이뤄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몇 십 년이 더 걸릴 수도 있죠. 다만 이런 세상이 돼야만 마크 저커버그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다. 개인이 온라인 사이트 하나 만든 것만으로 유수의 기업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사회.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그것에 대한 대가로 몇십 조 원을 벌어들이는 일도 가능해질 겁니다. 일자리는 줄어들 테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으로 변화하는 것이죠. 그걸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인더스트리 4.0이라 부르든 명칭은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큰 그림에서 결국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죠.”

▶스마트시티도 그런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될지.

“물론 스마트시티도 단시간 내 만들어지는 건 아닙니다. 시범도시 구축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입주자들이 들어오고 난 뒤 행동, 변화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야 되기 때문에 10~20년 동안 계속가야 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사회로 나아가는 밑바탕을 만들어 가는 의미 있는 도전이자, 국내에서 추진되는 첫 번째 시도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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