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만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고 관계를 맺으며 생활한다. 최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방법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요즘 지하철을 타면 다수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누군가와 손으로 대화를 한다. 소통하는 방법이 많이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소통이 잘 안되어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소통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얼마나 본능적이고 강렬한지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한다. 약 10년 전 개봉돼서 전 세계인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영화 ‘잠수종과 나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잡지 ‘엘르’지의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뇌졸중으로 왼쪽 눈꺼풀을 제외한 전신이 마비된다. 더 이상 손으로 글을 쓸 수도, 입으로 말을 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나 언어치료사가 불러주는 알파벳 철자에 눈을 깜빡이는 방법으로 다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약 15개월 동안 눈을 약 20만 번 깜박이는 방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완성한다.

충의 세계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생태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귀뚜라미 수컷은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약 10시간 동안 두 날개를 비벼댄다”고 한다. 윗날개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좌우로 비벼 소리를 내는 작업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육체노동이다. 소통을 위해 그 정도 노력을 불사하는 것이다. 그는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기 때문에 소통을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소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통을 바라보는 시각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소통을 단순 의사전달 기술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소통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되기에는 미흡하다. 정신의학 전문의인 하지현 교수는 “소통할 때는 전체 시즌을 보는 거시적 관점, 상대를 이겨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함께 나아가는 동반자이자 동업자로 보는 관점, 하고 싶은 말을 하기보다 잘 들어주려는 마음, 상대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이 모인다”라고 한다.

인간관계의 통찰력을 제공하는 동양철학 관점에서 장자의 소통철학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비록 2400여 년 전 사상이지만 장자의 소통철학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장자는 누구보다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장자의 소통철학은 크게 세 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김치풍, 2010).

첫 단계는 상대방과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소통의 출발은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틀린(Wrong)생각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나와 다른(Different) 생각을 가진 존재로 이해한 것이 소통의 기본전제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단계는 상대방의 요구에 적합한 소통을 실천하는 것이다. 첫 단계에서 상대방과의 차이를 인지했다면 그다음으로는 상대방에게 적합한 소통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자는 노나라 임금이 바닷새를 종묘 안으로 데려와 술을 권하고 소, 돼지를 잡아 대접했으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할 뿐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사흘 만에 죽어버린 이야기를 통해, 아무리 좋은 대우라도 상대방의 니즈를 고려하지 않는 소통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셋째 단계는 소통을 통해 상대가 아니라 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장자는 꿈속에서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객체인 나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비가 됨으로써 주체가 변화하는 호접몽 이야기를 통해, 타자를 주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존재로 인정하고,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주체가 변화해야 함을 표현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소통을 갈망하고, 소통의 길이 막히면 힘들고 괴롭다. 소통이란 관계를 맺어나가기 위한 방법이다. 우리는 소통을 통해 우선적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반면 소통을 통해 내 자신이 변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통을 통해 중요한 것은 먼저 ‘내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변화하면 상대방도 변화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사람들과의 만족스러운 관계를 위해서 장자의 소통철학 관점에서 소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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