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호 고려대 교수(전 조달청장)
정양호 고려대 교수(전 조달청장)

‘용건이 있는 학생은 노크하고 밖에서 기다리세요.’ 얼마 전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 교수연구실에 붙은 안내문이다. 보통 학생면담 때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출입문을 열어놓고 상담하는데 이젠 연구실 밖에서 상담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미투 운동(#MeToo)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나서 생긴 풍경이다. 중간고사도 있고 학생들도 민감한 시기이니 사제지간의 만남을 투명화하자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제자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속마음이 은연중에 드러난 것은 아닐까? 미투 운동이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실질적으로 사제지간의 만남을 제한하는 기능을 하는 것 같아 필자는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얼마 전에는 공무원행동강령이 개정되었다. 그 가운데 퇴직공무원 접촉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 퇴직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소속기관 퇴직자와 골프나 여행, 사행성 오락 등 사적 접촉을 사실상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퇴직공무원과의 접촉이 비리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직자는 퇴직 후 3년간 유관기관 취업이 이미 금지되어 있는데 여기에 추가하여 사적인 만남까지 사전에 제한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생각해 보고 싶은 점은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확대되고 있는 소통 부재의 모습이다. 스승이란 모름지기 적극적으로 제자의 멘토나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선배는 후배에게 따끔한 충고와 조언을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직위를 이용한 성희롱이나 부당한 청탁은 없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잘못이 발생하면 엄격하게 책임을 물으면 된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사전에 만남 자체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시대정신과 배치된다는 점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에 의해 각 분야가 스마트화되고, 사물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기술에 의해 각 부문이 연결되면서 시너지가 발생하고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 그 출발점은 바로 서로 다른 부문 간의 만남이다. 만남이 있어야 소통이 일어나고 소통이 있어야 통합이 일어난다. 소통과 통합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시대정신이다.

정부에서는 오랫동안 전기자동차 보급 확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전기자동차와 관련된 각 부문 간 충분한 만남과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전기자동차 제조 측면에서는 차량 부문과 전자장치 부문, 배터리 부문에 경쟁력을 가진 주체들이 만나 협업을 해야 한다. 충전시설 확충은 말할 것도 없고 전기자동차에 알맞은 보험제도와 중고가격 평가시스템도 함께 보완되어야 한다. 여기에 태양광 발전의 확대와 에너지저장장치(ESS)의 발전도 함께 이루어지면 금상첨화이다. 이와 관련된 정부부처나 공공기관, 기업들 간에 충분한 만남과 협력이 이루어져 왔는지를 자문해보면 현재의 상황이 충분히 이해될 것 같다.

최근 남북문제가 급진전되어 전쟁 가능성을 걱정하던 적대적 상황이 협력의 파트너로서의 공동번영을 꿈꾸는 단계로 발전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크게 높아졌다. 남북관계 진전의 핵심도 바로 소통과 협력의 가속화라고 생각한다. 지난 2월에 개최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의 만남이 시발점이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거쳐 한반도 평화정착과 민족번영이라는 꿈이 실현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어찌 남북문제뿐이겠는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각종 장벽을 허물고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주어진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불법과 비리의 사전예방 기능도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을 선택할 때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사전적 규제를 통해 모든 만남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큰 변화의 방향과 배치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비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규제는 잘못된 것을 사후적으로 엄격히 처벌하는 행위규제 위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길이 더 빠른 길일 수 있다. 어떤 길이 사회의 큰 흐름과 조화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비행기 사고가 일어나면 귀중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고 비행기 타는 것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활주로나 항공관제 시스템을 보완하고 비행기 예방점검과 안전운전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사고 가능성을 줄여가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정양호 전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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