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업체・인증기관 강경자세 고수 ‘일촉즉발’

나주에 있는 전파연구원 전경
나주에 있는 전파연구원 전경

LED조명의 전자파 적합성 평가 논란으로 업계와 시장, 지자체가 혼란에 빠졌다.

조달청이 14일 미인증 품목에 대한 거래정지 조치를 예정대로 시행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아직 인증을 받지 못한 업체와 산업표준화법(KS)에 의거해 기존대로 판매가 이뤄져야 한다는 업체 등 여러 상황과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와 업체, 시험인증기관 등 연관된 기관 모두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나라장터 조명 제품의 90%가 불법(?)

이번 사안은 익명의 민원인이 현재 나라장터에 등록된 조명 제품의 약 90%가 불법 제품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민원은 전파연구원에 공개된 전자파 적합성 평가 현황을 근거로 나라장터 쇼핑몰에 등록된 약 1만5000개의 제품 중 1만2000개의 제품이 전자파 적합성 등록 필증을 받지 않았다며 위법이라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조달청은 해당 내용을 접수하고 LED등기구에 대한 적합성 평가 실태조사와 전파법 문구 해석을 국립전파연구원에 의뢰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이에 대해 전파연구원은 KS기준에 따른 인증 품목이라 하더라도 전자파 적합성 기준에서 정한 허용 기준과 동일하거나 그 이상인 기자재가 아니라면 모두 재인증 대상이라고 못 박았다.

또 시험받을 당시의 회로 구성을 유지해야 하고, 전자파 적합성 시험을 수행 가능한 5개 시험기관(KTL, KTR, KTC, 엔트리연구원, KCL)에서 발급한 성적서가 아니면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조명업계는 이 같은 대응에 대해 전파연구원의 입맛대로 강제법을 해석한 폐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전파연구원장이 2016년 조명기기의 적합성평가 개선에 관한 간담회를 통해 조명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후속조치(2016년 6월 23일)까지 마친 상태에서 손바닥 뒤집듯 기존 발언을 번복해 시장의 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전파연구원은 2016년 조명 단체와 업체가 건의한 조명기기의 적합성 평가제도 개선에 관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조명 업계 관계자들은 KS와 KC, 고효율 등 여러 인증으로 인한 비용 부담이 심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전파연구원은 그에 따른 후속조치로 평가 기준을 KS와 일치시키고 전파법 제58조 3항에 의거, KS인증제품은 평가를 면제하도록 조치했다.

조명업계는 그동안 수행해 왔던 대로 KS시험 기준에 따라 구간별로 전자파 적합성 시험을 받았고, 구간 내에 속한 품목은 모두 면제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전파연구원에서 주장하는 평가 대상으로 따지면 대부분의 제품이 불법을 저질러왔다는 해석이 되지만, 상위법인 KS기준으로 따져보면 모두 합법적인 판매가 되는 셈이다.

결국 업계는 기준이 되는 상위법을 제쳐두고 하위법을 따르는 기형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 조명업체 대표는 “조명은 KS와 KC기준을 통해 관리돼 온 지 수년이 됐고, 특히 조달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각종 시험인증 항목을 통과해야 가능하다”며 “조명 업체가 전파법이 분리된 2012년부터 해당 내용을 무시하고 불법을 저질러 왔고 그러한 제품이 90% 이상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개했다.

이에 대해 전파연구원 관계자는 “3개 법무법인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결과 면제 대상을 제외한 제품은 모두 전자파 적합성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나왔다”며 “이미 2012년 전파법으로 분리된 이후 해당 기준이 적용돼 왔지만 업체들의 자기중심적인 해석으로 받아야 할 필증을 받지 않은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지자체 “시행했던, 시행해야 할 사업 어쩌나”

나라장터를 통해 제품을 구매하고 있는 공공기관과 지자체에서도 전자파 적합성 평가에 대한 논란이 일자 사업 시행 여부 자체를 연기하는 등 혼란에 빠진 모양새다. 여기에 일부 필증을 획득한 업체들이 타사 제품에 대해 불법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영업을 하고 있어 시장은 더욱 악화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수도권의 한 지자체에서는 상반기에 교체를 완료하겠다고 밝힌 사업을 하반기로 미루고 시장의 추이를 살피는 방향으로 노선을 선회했다.

이 지자체 담당자는 “불법 논란에 휩싸인 상황에서 원래 계획대로 사업을 시행하기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라며 “이번 사안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하반기에 사업을 다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 사업을 진행한 곳에서도 당혹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거래정지가 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불법으로 규정된 제품이 버젓이 설치돼 있다는 민원이 제기되면 기존 제품을 폐기하고 재설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예산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정부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2020년 공공기관 LED조명 보급률 100%를 단계적으로 충족시키려면 재설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지자체 담당자들의 목소리다.

조달청에서도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각 지방조달청이 취합한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추가적인 대응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히면서도, 그동안 판매된 제품에 대한 사법 조치나 행정 제재 등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업계 집단 대응 ‘움직임’

이번 사안을 두고 LED조명업계는 판매 정지에 당하지 않기 위해 전자파 적합성 필증을 신청하는 한편 집단 대응을 준비하는 등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파연구원의 주장이 굳어질 경우 조명 업체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수천 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품별로 필증을 취득하려면 적게는 50만 원에서 많게는 150만 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다. 나라장터 쇼핑몰에 등록된 제품에 대한 필증을 모두 취득하려면 600억 원에서 1800억 원 이상의 인증비용이 들고, 이는 고스란히 조명업계의 부담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추후 대형 건설사 등 민수 시장에서도 전자파 적합성 필증을 요구할 경우 업계의 부담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에 조명업계는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국민권익위원회에 행정심판 제기를 검토하는 등 각종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다수의 업체에서 전파연구원이 받은 유권해석 결과를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양대 조합과 조명 업체들이 모여 해당 사안에 대해 집단 대응할 방침이다. 조달청과 관련 기관들은 산업표준화법에 의거해 거래정지 조치를 취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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