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이전 견실했던 에너지공기업들이 불과 10년 만에 수십조원대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광물자원공사는 2016년 이후 완전 자본잠식에 빠질 정도로 유동성 위기에 놓여 51년 만에 문을 닫고, 광해관리공단과의 통합이 확정됐다.

석유공사도 겉으로는 현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추가 손실 가능성이 높아 제2의 광물자원공사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부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규명, 감독부처의 문책 없이 해당 공기업의 책임으로만 돌리려 하고 있어 다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 안민석·윤소하 의원과 MB자원외교 진상규명 국민모임(참여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나라살림연구소 등), 공공노련 등은 공동으로 2일 국회에서 ‘MB정부 자원외교비리 진상규명 토론회’를 열고, MB 정부 자원외교 비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목소리를 높였다.

◆하베스트 인수는 MB정권비리의 산물인가= 김병수 석유공사 노조위원장은 MB자원외교 비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인수비리부터 그 실체와 책임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지난 2009년 9월 석유공사가 하베스트의 상류부문 인수협상을 시작하면서 처음 제시한 가격은 24억(캐나다)달러다. 하지만 하베스트와의 협상 과정에서 30억 달러로 높아지고, 갑작스레 하베스트 측에서 하류부문(NARL)까지 인수해야한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결국 인수를 포기한다.

하지만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은 최경환 장관의 호출을 받아 면담을 한 후 부사장 등에게 하베스트 전체 인수를 지시한다. 또 경영 부실덩어리인 NARL을 인수하기 위해 내부수익률(IRR)을 조작하고, 투자자문사인 멜릴린치는 불과 4일 만에 경제성 평가를 끝낸다. 인수가격도 40억(캐나다) 달러까지 오른다.

감사원 감사에서도 하류부문(NARL 정유공장)의 부실을 잘 알면서도 석유공사가 충분한 검토 없이 인수했다며 계약체결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이사회에도 허위설명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병수 위원장은 “하베스트는 우리 돈 4조 5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자산 규모가 매우 크고, 인수협상과정에서의 자산실사 및 평가 등이 매우 기술적이고 복잡해 관련자들의 진술과 조사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강영원 사장은 당시 이병철 산업부 자원개발총괄과장이 호출해 최경환 장관을 면담했고, 면담 당시에는 김영학 2차관도 배석한 만큼 이들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원외교는 과연 정책인가, 정치권의 개입인가= 자원외교 비리 문제를 지난 4년간 파헤치고 있다는 고은상 MBC 기자는 “자원외교는 이명박 정권 이전에도 정치권과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게 석유공사 직원들의 일관된 진술”이라며 “유전, 광구거래에는 브로커가 반드시 뒤따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단 거래 자체가 수천억원에서 수조원대에 이르는 거액인데다 구입을 희망하는 회사가 있는지, 그 회사가 쓸 수 있는 자금력은 얼마인지 정확히 양쪽을 중개할 수 있는 정보력도 있어야 해서 자원브로커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 캐나다 등의 국가는 국제투자은행이 광권 거래의 주요자문사이자 브로커인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자원, 광권에 대한 소유권을 정부가 갖고 있어 정부가 정부를 상대로 거래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고 기자는 “하베스트 인수에 대해 미국 월가에서도 비정상적인 거래였고, 하베스트 측 자문사에게 일조의 리베이트가 넘어갔다는 지라시가 돌 정도로 하베스트 인수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투자”라며 “정부 정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한 게 아니라 분명 누군가는 사적인 이익을 보려고 일부러 석유공사가 비싸게 산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밝혔다.

◆정치인·경영자들의 일탈인가, 시스템의 문제인가=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은 광물자원공사와 석유공사의 경영악화 원인을 공기업 직원들의 일탈이나 경영자 한 두 사람의 책임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MB정부의 해외사업 비리는 자원공기업뿐만 아니라 한전이나 발전공기업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어 반드시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며 “공기업의 속성상 정부의 허락이나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수 천 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공기업은 정권의 하수인인 기재부와 기재부의 하수인인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만큼 이번 기회에 공운위법을 바꾸고, 공운위 위원에도 3분의 1가량은 시민사회단체에서 참여토록 해야 한다”며 “회사 이사회에도 노조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국가 비리가 발생한 국가들의 공통점은 국가 권력을 개인이 사유화했던 나라들이었다”며 “진정한 적폐청산은 시스템을 바꿔서 공적 책임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공기업 간부로 선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창섭 가천대 교수는 “철저한 진상규명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며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구축해도 힘 있는 사람이 이를 무시하고 강요하면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게 공직사회여서 이번 기회에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자를 확실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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