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철도사업 경쟁체제 도입 주요 정책으로 이행
영국·프랑스 등 주요국 철도시장 개방 움직임 계속

코레일·SR 통합론을 논할 때 빈번히 거론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철도 경쟁을 철폐하고 통합 중심으로 프레임이 옮겨가고 있다는 게 통합 찬성 측의 주요한 근거 중 하나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추진하고 있는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산업 구조평가 연구용역’에 해외사례가 과업 내용으로 포함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보다 앞서 경쟁체제를 도입한 사례들을 검토해 세계 철도시장의 동향을 파악하겠다는 얘기다.

철도 부문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국가들은 어떤 전철을 밟았을까. 국내 상황과의 유사점, 차별점은 무엇일까. 주요 사례를 통해 따져봤다. (편집자 주)

지난 1991년 유럽연합(EU)는 ‘교통 개혁안’을 발표, 장기적인 철도 운영 방침을 정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운영과 인프라를 독립시키고,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인프라에 법적으로 민간의 진입을 허용함으로써 경로의 할당·접근 비용에 대한 차별적 규칙을 철폐한 게 골자다.

이 같은 정책은 유럽 내 철도사업의 대대적인 분리운영 혹은 민영화를 초래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국과는 상반된다. 교통 인프라에 대한 민영화를 국부 유출, 시민 편익 감소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국내 현실과는 달리, 유럽에선 국민들의 동의하에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구조개혁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쟁체제 도입에 따른 철도 공급 증대, 서비스 개선 등의 편익이 국가 독점체제일 때보다 크다는 사회적 합의 덕분이다.

국내에서 철도 경쟁체제 도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는 영국 철도산업을 살펴보면 이러한 인식이 확연히 드러난다. 영국은 1997년 기존 독점적으로 운영되던 영국철도공사를 선로·여객운행·화물운송·열차임대·유지보수 등 45개 회사로 쪼갰다. 분리 당시 한국의 코레일과 SR에 해당하는 여객운행 회사 수만 25개에 달했다.

하지만 분리운영의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부 회사들이 폭리를 취하면서 2003년에 이르러 시민들의 반발은 거세졌고, 안전 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이후 영국은 다시 독점체제로 회귀했을까. 결과는 정반대다. 현재 영국에서는 10여개의 운영회사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부 통폐합 논의가 있긴 하지만 시너지 효과가 나는 기업들에 한해 논의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구조개혁에 따른 악영향을 보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독점체제 회귀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는 게 없다. 실제로 KDI 공공투자관리센터가 2015년 발표한 ‘철도부문 투자 및 운영체계 효율화 방안 연구’ 보고서는 영국에서는 여객서비스는 물론, 화물 열차 부문에서도 지속적으로 시장 개방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보고서에서는 영국 철도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 “철도 산업의 규모의 경제에 따른 이익보다는 독점의 폐해가 더 크다는 인식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비단 영국만의 일은 아니다. 경쟁체제 도입으로 한바탕 소요를 겪은 바 있는 프랑스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영국~프랑스~벨기에 지역을 잇는 유로스타(유럽고속열차)는 EU 지침 개정으로 인해 내년부터 프랑스를 제외한 타 국가에도 문호를 열게 된다. 이용객의 관점에서는 공급 증대로 인한 선택권 확대가 더 크다는 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는 국내 철도개혁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데 일부 기여할 수 있지만, 통합 여부를 논하는 참조점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최초 경쟁체제 도입이 논의될 때의 배경은 유사할지라도, 담론의 배경이 되는 인식 수준이나 향후 이행방안이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고속철도산업연구센터장은 “유럽 등 철도 선진국에서는 경쟁체제 도입 후 그에 따른 장점은 확대하고, 단점은 보완하는 식으로 정책을 이행하고 있다”며 “일부 국가의 사례를 근거로 '통합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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