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일면 숭실대학교 교수
황일면 숭실대학교 교수

어느 성직자가 강연을 하면서 ‘삶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져놓고 ‘삶은 계란’이라고 유머를 하며 청중의 주의를 집중시켰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삶은 무엇인가’란 질문은 원초적이면서도 누구에게나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된다. 그 대답으로 ‘삶은 관계’라거나 ‘삶은 배려’라는 공감되는 답변들도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적관계 안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인정과 사랑을 확인하며 위로와 용기를 얻고 살아가기 때문에 ‘삶은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얼마 전에 모친상을 당한 가까운 지인의 상가에 들러 조문을 하면서, 고인을 알고 지내왔거나 고인의 후손과 관계된 많은 조문객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조문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친척과 친구, 사회적 관계를 맺어왔던 사람들이 상가에 들러 조문하는 이유는, 상주 및 친척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결혼이나 집안의 큰 일을 맞을 때에도 일가친척과 친지들이 모여 축하해주고 기뻐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삶은 관계’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그 관계에 다리를 놓는 것이 ‘말’이다. 사람은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분명히 관계적 존재임을 알 수 있는데, 사람들의 관계 사이에는 ‘말’이 존재한다.

말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각각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말이 있어 관계의 다리를 놓게 되며, 상대방과 주고 받는 대화를 통해 그 관계의 다리가 유지된다.

사람은 하나의 섬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독립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하나의 개체임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러한 개체 간에 다리가 놓여 진다는 것은 이해하고 소통함으로써 관계가 맺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고 그러한 관계의 다리를 이어주는 것은 ‘말’인 것이다. 그러기에 치우치는 측면이 있는 표현일 수는 있지만, 우리들의 삶에서 말보다 중요한 게 없다.

말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며,타인이나 세상과 연결되는 연결고리의 역할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 준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한 말이 제 값과 역할을 다 했을 때에야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고, 타인이나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가족과 회사, 친지관계 등 어떤 모임이나 조직에서라도 그 구성원으로서 좋은 관계로 살아가려면 말을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랬어?그래! 그렇구나!,그럴 수도 있겠다,힘들었겠다,힘들지?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좋을까? 참 잘했네! 잘 될 거야! 같이 잘 해보자! ”등과 같이, “상대방을 수용하고 이해해 주며 공감·존중·격려·위로·칭찬하는 말들과 긍정적이면서도 기쁨과 희망을 나누는 말들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말이 씨앗이 돼 세상을 만들고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창세기 첫 말씀의 성취는 하나님이 이르신 말씀에 의해 이뤄졌다.

이같이 인간관계의 다리를 놓아주고 유지해 줄 뿐만 아니라 미래를 만들고 세상을 변화시켜가는 중요한 ‘말’을, 왜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 세상을 좀 안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그렇게밖에 말을 못하는 걸까? 왜 우리는 반복하며 말실수를 하고 상처를 주는 대화를 하게 되는 걸까? 그것은 우리의 ‘말’이 우리의 나이만큼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삶의 담금질을 거치면서 거기에 합당한 마음의 그릇을 키우지 못한 것이다. 말은 마음에서 나오며 마음을 따라 자라는데,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성장하지 못하고 그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말을 해서다.

나이가 많을수록 나이에 걸맞은 말을 해야 할텐데, 숙성되지 않은 말을 쏟아내는 경우도 있고 쓸데없는 말 욕심을 내어 듣는 이를 피곤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삶의 연륜이 더해질수록 말에 대한 책임을 더 느껴야하고,나의 말이 나오는 그릇을 늘 돌아보아 실수를 줄여가야 할 것이다

성경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이나,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라는 말씀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말하기는 테크닉보다는 마음으로 접근할 문제이다.

말은 한사람이 가꾸어 온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므로,먼저 내면의 성장을 구해야 한다.

말은 독백도 있지만 상대와의 대화에 쓰이므로, 대화에 있어 절반은 나의 책임인 것이며,결국 나한테 모든 게 달려있다.그러므로 상대를 탓할 수 없으며,나의 마음그릇을 키워야 할 뿐이다.사람사이에 말이 있다.깊고 넓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로 아름다운 관계의 다리를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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