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경 한전 경제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
이윤경 한전 경제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우리나라를 방문해 본 경험이 없는 외국인들을 초청해 여행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예능이 인기를 끌었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다녀갔는데 나라별로 사람들의 취향이나 행동이 어찌나 다른지 프로그램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시청자 반응이 좋았던 독일편은 진심을 다해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농담도 할 줄 모르고 스스로 재미없다고 평가할 만큼 매사에 심각할 정도로 진지하며 아주 철저한 사람들일 거라는 예상을 뒤집어서 더 재미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에너지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독일을 더욱 각별하게 느끼는데 바로 그들의 <에너지전환(Energiewende)> 때문이다. 독일말로 는 <에너지 도약>을 의미한다는데 우리에게는 <에너지전환>이란 단어가 더 익숙하다. 일부는 최근 우리나라의 에너지정책 방향 변화를 독일의 <에너지전환>과 동일하게 바라보기도 하는 것 같다.

독일의 ‘에너지전환’은 1990년대 이후 30여 년에 걸쳐 진행됐다. 1990년대에 신재생에너지 촉진을 위한 발전차액지원제도(FIT, Feed-in-Tariff)를 도입하였고 2000년에 신재생에너지법을 제정, 연도별로 신재생에너지 공급목표를 세웠다. 2010년에는 에너지 구상(Energy Concept)에서 에너지 효율 향상, 에너지소비 감축 목표 등을 함께 제시했다.

이때 원자력발전은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과도기 기술로 판단, 가동기간을 연장했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후 기존의 에너지 구상을 에너지 패키지(Energy Package)로 개정했다. 과도기 기술로 인정했던 원자력을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독일은 성공적인 <에너지전환>을 이루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인지 각 나라의 <에너지전환>에 역할모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 이면을 살펴보면 우선 세계적으로 우수한 풍력자원을 보유한 국가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JPMorgan에서 세계 주요 국가의 신재생에너지 자원 잠재량을 평가했는데 독일은 아일랜드 다음으로 풍력자원이 많은 나라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신재생에너지 수용성과 우호적인 여론이다. Renewable Energies Agency가 조사한 내용을 보면 독일의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용성은 최고 수준으로 프랑스나 일본, 폴란드보다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여론도 좋은 편이어서 설문 대상자 중 66%가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매우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독일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초기에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정책적으로 지원금을 지급했다. 이 지원금은 소비자가 전기요금과 함께 납부하는 EEG(Erneuerbare Energien Gesetz, Renewable Energy Act) 부담금으로 충당한다. 즉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어나면서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EEG 부담금도 같이 증가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독일 소비자의 반응이 뜻밖이다. EEG 부담금 수준이 적정하냐는 질문에 절반 이상(54%)이 적절한 수준이라고 답변한 것이다. 아직 EEG 부담금이 적은 편이라 더 지불해야 한다는 응답자도 6%나 된다.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이 때문에 전기요금이 많이 오르면 소비자가 부담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독일의 경우 소비자의 60%가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에너지전환> 성공의 열쇠를 소비자가 쥐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기본적인 원칙에 대한 동의도 필요한 것 같다.

어쩌면 독일이 <에너지전환>을 시행하는 과정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30년에 걸쳐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정책을 수정하고 또 번복하면서도 결국은 전 세계가 동의하는 지향점에 도달해 가는 과정이 멋있다. <에너지전환>의 걸음마 단계에 있는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것은 정책이라는 외형과 더불어 그 바탕을 메우고 있는 그들의 성급하지 않은,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고 진지한 정신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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