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극동 코레일테크 대표이사
반극동 코레일테크 대표이사

고위직공무원이 퇴직 때가 되면 공기업이나 관련단체에 임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전관예우 문제와 공직자윤리법으로 인하여 제한하기도 한다. 그 밖에 법과 규정의 취업제한 범위 외에는 기존의 관례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십 년의 공직기간 터득한 노하우를 사장시키지 않고 관련분야에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 인적자원 활용 차원에서 필요한 제도이다. 공기업이나 일반 기업체도 비슷하다. 조기퇴직하는 조건으로 자회사나 협력업체에 재취업하는 경우다. 필자가 이전에 근무했던 코레일도 비슷하다. 처장급 이상 간부는 2~3년 전에 퇴직을 하여 출자회사인 민자역사나 자회사로 이직하는 경우다.

필자도 2년 반의 정년을 남겨놓고 공모가 난 자회사에 응모하여 사장으로 선정되었다. 36년을 근무하였던 곳을 떠나는 아쉬운 마음과 오랫동안 비상근무 등으로 억매였던 곳을 벗어난다는 시원함이 교차하였다. 자회사 사장은 대체로 본부장급으로 선정되는데 난 행운이 좋아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자회사로 옮긴지 얼마 안 되어 지인 혼사에 갔다가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퇴직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자리에 갔으니 지금까지 잘 해온 것처럼 욕심 내지 말고 후배들에게 많이 베풀며 살라”며 “근무하는 동안 주위사람들에게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퇴직 후에 잊히기도 하고 존경 받기도 한다”고 했다.

은퇴 후 새로운 생활을 하는 것을 인생 2모작이라고 한다. 재취업을 하여 생활하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때까지라고 한다. 이 후 죽기 전까지 남에게 의지해서 사는 시기는 인생 3모작이라 하고, 죽은 후를 인생 4모작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 4모작을 멋지게 만들기 위해선 단계별로 잘 마무리하여 순차적으로 넘어가야 가능하다. 전 단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마지막 단계가 좋게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된다. 마지막은 웰다잉, 죽은 후 명성이다. 예술가, 정치인 그리고 기업인들이 살아생전보다 사후에 평가받아 회자되는 것도 그런 경우다.

몇 년 전에 모 단체에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했었다. 그 때 그 일을 추진했던 한 분이 라디오 프로에 나와 인터뷰하는 것을 들었다. 대담자가 “최종 선정 기준이 뭐였습니까?” 하고 물으니 마지막에 친일행위를 했는지 아니면 반일행위를 했는지가 판단 기준이라고 했다. 중간에 일부 다른 행동을 했더라도 나중에 반일을 했다면 친일파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끝부분에 어떤 행동을 했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 사람의 마지막 행동을 보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이 최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본심이 나온다고 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대표이사 공모에 응모하여 면접을 보고 곧 바로 최종 3명에 선정되어 인사검정을 의뢰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간이 꽤 지나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 기간 동안 정부 인사 관련기관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여러 경로로 평판심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 나니 지난해 장관이나 총리를 임명할 때 청문회를 한 장면이 떠올랐다. TV를 통해 후보자의 부정적 과거를 샅샅이 들추어내어 곤욕을 치른 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 일로 내 자신의 지난 과거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 ‘미투’운동으로 하루아침에 유명 정치인과 예술인, 연예인, 교수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한평생 쌓아올린 명성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 불행히도 자살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평소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처럼 끝을 좋게 하려면 살아있는 동안 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살아가는 과정 순간순간을 더 정직하게 살피며 생활해야 한다. 곧 있을 지방선거에서 또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과거 행동으로 중간에 탈락할지 알 수 없다. 지난달 대전에선 홀로 사는 할머니께서 평생 번 돈 전 재산을 모 대학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끝을 잘 맺는 사람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멋진 인생 4모작을 만들려면 지금부터라도 더 베풀며 정직하게 살아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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