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지도’ 하나 믿고 여행 시작~

스위스 로잔의 Chateaud’Ouchy 호텔
스위스 로잔의 Chateaud’Ouchy 호텔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시작한 곳은 스위스 로잔에 있는 샤넬의 묘를 찾아가는 것이다. 8월의 스위스… 얼마나 멋진가!! 생각만 해도 스위스의 여러 곳들이 마음을 스친다. 그 멋진 많은 곳들을 남겨두고 오로지 가브리엘 샤넬의 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로잔으로 출발하는 기분은 정말 특별했다.

아침 일찍 파리에서 테제베(TGV)를 타고 로잔에 도착했다. 처음 여행을 준비할 때는 로잔부터 방문해서 가브리엘 샤넬의 묘를 둘러보고 그녀의 삶을 거꾸로 찾아가 보는 계획을 했었다. 그러나 한정된 시간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일년 중 단 이틀만 공개하는 ‘이튼홀’ 오픈데이와 겹쳐 어쩔 수 없이 일정을 갑자기 바꾸어서 처음 계획대로 진행하진 못했지만 이제 글을 쓰는 시작은 원래의 생각대로 스위스 로잔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혼자 여행한다는 것이 반드시 좋기만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여행 중 허전함이 스멀스멀 밀려오기 시작하면 난 자신을 세차게 몰아붙인다.

‘이건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야!’

그러면 슬며시 자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강아지가 날 따라오듯이 ‘꽁지’를 내리고 얌전히 말을 듣는다. 내가 어디론가 혼자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모두가 오십 퍼센트의 부러움과 오십 퍼센트의 염려로 만들어진 표정을 짓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혼자서 여행을 감행(?) 해온 나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이제 나이를 먹으면서 왠지 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표를 자주 꺼내서 들여다보는 것 같다.

이럴 때 누군가가 옆구리를 쿡! 찌르면 그 핑계로 항복을 하고 누군가와 함께 나서겠지만 다행히 이번에도 별다른 일 없이 혼자서 이곳을 왔다. 내가 이 곳에 ‘구글지도’ 하나 믿고 왔다는 것을 다른 이들이 알면 엄청난 무모함에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여행을 한다. 지도의 힘을 믿으니까.

이 글도 내가 무진장 존경하고 흠모하는 김정호 선생님의 ‘고산자’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며 쓴다. 바쁘다고 미루다 집 주변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군자 CGV까지 원정을 왔다. 나는 이상하게 예전부터 지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 시대가 되기 전엔 어느 곳엘 도착하든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지역 지도를 구해 내 위치 확인하기를 버릇처럼 했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본 김정호 선생님이 그린 지도가 위성사진으로 찍은 사진과 얼마나 흡사한지 그 싱크로율에 놀라서 그날부터 광팬이 되기로 작정했었다. 이랬으니 어떤 경우에도 ‘고산자’ 영화를 놓칠 내가 아니다.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지 않는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실례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작자나 감독에게 나로선 몹시 감사할 일이다.

요즘은 일본말 ‘오타쿠’가 흔히 쓰인다. 뭔가 하나 정도는 아주아주 깊이 파고들어가 보는 것은 꽤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 자신도 신나는 일이지만 나 같은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에게 재능기부처럼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나이가 들어 노인의 반열에 들어갈 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 오타쿠 한 개 정도는 있어야 멋쟁이 노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외롭지 않은 노년을 위한 지참금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미래에 누군가가 가브리엘 샤넬에 대한 재미있는 스토리를 아주 잘 풀어낼 적격자로 ‘김영일’을 인정해주는 그런 일이 생길 것이며 그때는 나이듦이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너무 비약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긴 하지만 이 같은 비약이야말로 생전 처음 책을 쓰겠다고 작정한 나를 스스로 유혹한 미끼이기도 하다.

암튼 가브리엘 샤넬의 묘가 있다는 주소 하나만 달랑 들고 한국여자가 스위스 로잔까지 갔다는 것은 어쩌면 코미디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네이버에 들어가면 없는 것이 없고 웬만한 것은 거의 다 감을 잡을 수 있지만 가브리엘 샤넬의 묘에 관한 포스팅은 없는 건지 못 찾은 것인지 몰라도 내가 원하는 정보는 얻지 못했다. 로잔역에서 우버택시로 호텔에 도착해 방에 올라가니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방이었다. 예전의 성의 일부를 활용해서 객실을 만든, 전망이 아주 멋진 호텔이다. 창문을 열고 하루 종일 호수만 바라봐도 행복할 것 같은 곳이었다.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고 구글지도를 세팅해보니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 것 같다. 직선으로 2.5km, 평소에 나이키플러스라는 앱으로 산책을 하는 나에게 이 정도 거리는 충분히 걸어서 다녀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급할 것도 없고 시간도 넉넉해 걸어가기로 했다. 스위스는 외국인에게는 살인적인 대중교통비로 유명한데, 언제부터인가 외국인 호텔 투숙객에게 숙박일 수만큼의 대중교통 공짜 패스를 준다. 호텔에서 준 패스를 챙겼지만 이번엔 구글지도를 믿고 걸어가기로 했다.

어느 정도 걸어가자니 문득 샤넬의 묘에 꽃 한 송이라도 바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지만 가까운 곳에 꽃집이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여자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고 했다. 외국엔 작은 슈퍼마켓에서도 꽃을 팔던 것이 생각나서 가까운 곳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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