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몰랐다. 완만한 구릉과 푸른 전나무숲을 뒤덮은 눈꽃이 이토록 눈부실 줄은. 오대천 맑은 물가가 송어낚시로 이다지 활기찰 줄은. 동계올림픽의 열기가 그토록 뜨거울 줄은. 모두가 기다린 평창의 겨울은 아직 진행 중이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추억 하나 품고 싶다면 패럴림픽이 열리는 평창이 답이다.

17일간 백두대간의 중심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4년을 준비한 선수들의 땀방울과 저마다의 이야기를 알알이 엮어 커다란 울림을 전했다. ‘하나된 열정’으로 뭉친 선수들의 모습은 메달의 색깔이나 순위에 상관없이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러한 열기는 이달 9일부터 18일까지 열흘간 진행되는 패럴림픽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평창에 꼭 들러야 하는 이유다.

평창의 참멋은 눈 폭 쌓인 설경

“평창에 눈이 있겠죠?” 후배가 전화로 물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평창은 국내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지역 중 한 곳이다. 평균 해발고도가 700m에 달하는 데다 백두대간에 가로막힌 눈구름이 무시로 큰 눈을 흩뿌려서다. 연평균 적설량도 210cm에 달할 정도로 많은 편. 그만큼 눈 속에 폭 파묻힌 풍경을 만날 일이 잦다. 특히 대관령을 지붕 삼은 횡계 언저리가 ‘설국’으로 이름 높다. 선자령과 발왕산이라는 걸출한 눈꽃 명소와 보드라운 능선의 목장을 두루 끼고 있어서다. 이중 선자령(1157m)은 소문난 트레킹 코스다. 경사가 완만해 오르기 수월한 데다 정상 일대 풍광이 독특해서다. 상상해보라. 정상에 서면, 시리도록 푸른 동해와 백두대간 능선을 빼곡하게 메운 풍력발전기 수십 기가 보인다. 하늘목장과 삼양목장도 발아래서 광활하다. 그 완만하게 구릉진 눈밭을 눈에 담는 일이 사뭇 호쾌하다. 구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휴게소에서 4시간이면 왕복이 가능한 것도 장점. 하늘목장에서 오르면 편도 40여 분만에 선자령에 닿을 수도 있다. 발왕산은 이런 선자령 트레킹마저 귀찮은 이들이 환호할 만한 곳이다. 곤돌라 덕택이다. 용평스키장에서 곤돌라를 타고 20여 분을 오르면 산 9분 능선에 있는 드래곤피크에 닿는다. 여기에서 능선을 따라 800여m를 더 오르면 발왕산 정상(1458m). 힘찬 산들이 동서남북으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곳이라 이곳에 서면, 20여 분의 수고로 맞기엔 미안할 만큼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곤돌라는 현재 일반인의 이용이 통제된 상태다.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나 이용이 가능하니 참고하자.

푸르거나 하얗게 빛나거나

평창에선 오대산도 유혹적이다. 오대산 자락엔 도반과 함께 기분 좋은 향기를 내뿜는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숲길이 있다. 방아다리약수터와 월정사로 드는 숲길이다. 겨울이면 적막이 가득 고여 출렁거리는 이 숲길들의 주인은 검푸른 전나무. 이 숲이 폭설에 퐁당 잠기는 날이면 풍경은 더 깊은 고요에 잠겨 발자국 소리로만 빛난다.

그 푸르거나 하얀 풍경의 정점에 월정사가 있다. 신라시대 고찰인 월정사는 오래 깊이 묵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특히 일주문에서 월정사 경내에 이르는 1km가량의 전나무 숲길을 걸어 절에 닿는 시간이 백미. 눈 내린 직후라면 적막이 숲을 가득 채워 스스로의 마음 안에 잠기기 더욱 좋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지나 절에 닿으면, 세상은 고요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 청아한 소리로 환하다. 월정사 경내에 있는 팔각구층석탑이 내는 소리다. 뎅그랑 뎅그랑~, 지붕돌의 추녀 끝마다 풍탁이 달려 있어 은색의 눈바람이 불 때마다 고운 소리가 한 아름씩 쏟아진다. 가만히 서서 듣고 있노라면 속진(俗塵)이 씻기는 듯 마음에 평안이 깃든다. 월정사의 겨울은 눈으로 보건 귀로 듣건 그렇게 찬란하다.

이맘때는 상원사도 놓칠 수 없다. 월정사에서 8.1km가량 이어진 선재길을 따라 상원사까지 걸어갈 수 있는데, 걷다 보면 마음이 참 가지런해진다. 물론 두 절을 잇는 차도로 상원사를 찾는 것도 괜찮다.

쿨(Cool)과 핫(Hot) 사이

요즘 오대천 일원에서는 평창송어축제도 한창이다. 송어축제에서는 송어 얼음낚시를 비롯한 송어 맨손 잡기 등 다양한 겨울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송어 얼음 낚시’와 ‘송어 맨손 잡기’. 두껍게 언 오대천의 얼음벌판에 구멍을 뚫고 앉아 송어를 낚는 재미나, 차가운 얼음물에 화끈하게 들어가 맨손으로 송어를 잡는 재미가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하다. 올해 축제는 오는 2월 25일까지 오대천 둔치에서 열린다. 간 김에 송천(대관령면 횡계리) 일대에서 열리는 대관령눈꽃축제(2.7~2.22)까지 즐기고 온다면 금상첨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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