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은폐 막으려면 현실적 페널티 규정과 업계 현실 파악부터

# 한전의 단가업체로 과거 선정됐던 A사의 작업자가 공사 중 전주에서 뛰어내리다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일반적으로 현장에서 작업자가 다치거나 사고를 당했을 경우 산업재해 신청을 해야 하지만, A사는 한전에 산재신고접수를 할 수 없었다. 단가업체들의 경우 현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일정기간 출동요청이 막히는 페널티를 받기 때문이다.

# 한 건설업체의 공사를 수주해 공사하고 있는 B사. 공사 중 작업자가 정강이 뼈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작업자 산재접수를 요청한 B사는 해당 건설업체로부터 접수를 반려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A사와 B사는 모두 울며겨자먹기로 해당 작업자의 치료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작업자 부주의로 사고 생겨도 페널티에 산재신청 못해

전기공사업계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제대로 산재신청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해묵은 이야기다. 발주자로부터 적지 않은 페널티가 발생하기 때문에 차라리 비용을 들여서 직접 치료해주는 게 업계의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한전의 경우 단가업체가 사고를 냈을 경우 적게는 1주일, 길게는 수개월까지 출동요청을 내리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의 안전관리를 한층 강화하기 위한 대책이지만, 작업자 부주의 등에 의한 사고에도 페널티가 발생하기 때문에 업체 부담이 적지 않다.

민수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하청을 받은 전기공사업체가 사고를 내 산재신청을 할 경우, 발주자인 건설업체의 이름으로 접수를 해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건설업체의 산재 건수가 쌓일 경우 공공공사 입찰 시 감점요인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이 산재신청을 반려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상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산재처리가 불가능해 공상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한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단순히 업체가 공상처리함으로써 사고를 조용히 덮는 게 제대로 된 해결책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치료비 부담에 범법자 전락 위험까지

사고 발생 시 치료비를 직접 부담해야 하는 공사업체 대부분이 기술자 단체 보험 등에 가입하는 형국이다. 이 경우 해당 업체의 전년도 실적, 규모 등에 따라 보험비가 달리 적용되는데, 한 업체의 경우 기술자 단체 보험에만 연간 1000만원 수준의 금액을 지불하고 있다. 기술자별로 각각 가입하는 보험의 경우 1명당 연간 100만원 정도가 든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기공사업계에 적잖은 부담이다.

일부 작업자들이 발주자의 제재 탓에 제대로 산재신고를 하지 못하는 사업주에게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등 부작용도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재 사실을 은폐한 사업주에게 1년 이하 징역형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산업안전법 시행령‧시행규칙이 지난해 말부터 적용됐다. 자칫하면 사업주들이 범법자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업계에서는 단순히 산재 은폐를 막기 위해 업체의 부담을 더하기보다는 산재신청 시 제재를 받아야 하는 현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산재를 은폐할 경우 사업주가 큰 피해를 입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수시장에서는 하청업체의 산재 신청을 반려하는 실정이다. 또 작업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에까지 페널티를 부여하는 탓에 전기공사업체들은 아직까지 사고가 발생해도 이를 숨겨야만 한다고 업계 관계자는 지적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산재 은폐 등을 막음으로써 작업자들의 안전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의도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부담이 중소 전기공사업체들에만 돌아가기 때문에 지키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보다 현실적인 페널티 규정과 업계 현실을 파악한 개정안을 통해 제도적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늘어나는 비용부담에 업체들만 ‘속앓이’

정부 보상 부실로 업체 부담 가중

늘어나는 산재 부담에 업체들의 속앓이가 계속되고 있다. 현행법상 이를 보완할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 위험관리에 이어 산재 보상 부담까지 업체들에 전가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업계에 따르면 산업재해 발생 시 재해자에 대한 국가 보상은 미미한 수준이다. 근래에 들어 정부가 산재 보고를 유도하면서 재해자 수는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실제로 보상의 대부분은 업체가 떠맡는 경우가 잦아 업체들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업체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재해자 보상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토로한다. 보상을 받는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적용 기준이 제각각이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중대재해 보상이 대표적이다. 본지가 복수의 시공업체들을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중대재해자의 일부는 아예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일부 항목에 대해서만 치료비 등의 보상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 업체 관계자는 “중대재해의 경우에도 의료수가에 적용되지 않는 항목은 보상이 되지 않는다”며 “재해자들은 업체들이 가입한 자체보험에 의존하거나, 사측의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치료 보상금 외의 부수적인 비용에 대한 지원 역시 부실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례로, 시공업체들의 경우 업무 특성상 지방 출장이 잦은데, 현행법에선 회사 관할지 병원으로 와야만 보상을 받거나, 간병인·휠체어 등 재해 수준에 따라 필요한 지원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직접 공사 현장에 나가는 전기공사업체의 대표자들은 산재가 발생해도 산재처리를 하지 못해 모든 비용을 본인이 부담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근로자재해보상책임보험에 가입해 보상의 부담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업체 규모에 따라 보상액이 천차만별이고, 영세 업체의 경우엔 열악한 재정 상황으로 가입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 본질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산재 신청이 늘어날수록 업체들의 부담만 증가하는 기이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산재 보상을 현실화해 업체들의 부담을 경감시켜주지 않는다면 누가 여러 위험부담을 껴안으면서까지 산재 신청을 하겠느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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