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글로벌 영토 확대 위해 전선 최전방에서 고군분투 할 것”

“선배들은 LS전선을 ‘글로벌 넘버3’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위해 뛰었습니다. 그리고 10여년 후 이를 실현했죠. 선배들처럼 후배들에게 비전을 보여주고 싶어요. ‘글로벌 넘버1’ 도약을 위해 매진하겠습니다.”

김기수 LS전선 전력글로벌영업·시공부문장은 1996년 입사 이후 22년 만에 샐러리맨의 꽃 혹은 별로 불리는 임원으로 선임됐다.

지중초고압 설계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했지만, 1999년 싱가포르 현장 파견을 계기로 해외영업 최전선에 투입돼 관련 경력만 20여년을 거친 베테랑이다.

김 부문장은 “입사 당시만 해도 평생을 엔지니어로 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해외영업의 기회를 갖게 됐고, 싱가포르 현장까지 파견됐다. 회사는 물론이고 저로서도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나름의 성과가 있었고 보람을 느꼈다. 그때 얻은 경험이 해외영업에 ‘올인’하게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김 부문장은 가장 먼저 해외영업 초창기 싱가포르에서 좌충우돌했던 추억을 회상했다.

“싱가포르 현장에 투입돼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었어요. 3개의 턴키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자재납품부터 토목공사, 제품포설, 접속, 가압까지 모두 해야 했죠.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엔지니어와 손잡고 매일 전력청에 출근 도장을 찍었어요. 사고 없이 기한 내로 공사를 마무리하고, 스위치를 올렸을 때의 짜릿함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특히 커미셔닝 테스트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비가 굉장히 많이 내렸을 때가 기억나네요. 제품에 물이 들어가서 시험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일정을 맞추기 위해 3~4일을 드라이어를 들고 밤새 쫓아다녔어요. 제품에 들어간 물을 드라이어로 말려보겠다는 건데, 사실 필요 없거든요. 다만 걱정되는 마음에 손에 꼭 쥐고 다녔던 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어요.”

김 부문장은 LS전선 베트남 법인 최초 해외영업 담당 주재원이라는 경력도 갖고 있다.

“베트남 법인이 처음 세워지고 5~6년간은 파트너와의 불화와 문화 차이, 수요부족 등으로 선배들이 많은 고생을 했어요. 저는 선배들이 각고의 노력을 거쳐 어려움을 극복하던 시기에 베트남에 투입됐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한 일은 단순해요. 베트남산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LS 브랜드로 인정받도록 한 겁니다. 당시 시장에서는 메이드 인 베트남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중국의 힘이 원체 강한 곳이라, 중국산을 많이 찾았죠. 베트남산이 아닌, LS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베트남을 거점으로 동남아와 서남아, 남미, 유럽까지 전파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 가장 큰 재산이 됐다.

지난해 중순 전선업계를 뒤집어놓은 뉴스, LS전선이 싱가포르에서 국내 전선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인 3700억원 초고압 케이블 수출에 성공하는 ‘대박 사건’을 만드는 기반이 된 것.

김 부문장은 이와 함께 2200억원 카타르 초고압 프로젝트, 6000만달러 방글라데시 가공 턴키 등 굵직한 해외 수주건을 모두 진두지휘해, 세계 각국에서 LS전선의 깃발이 날리도록 만들었다.

김 부문장은 앞으로도 LS의 해외 영토 확대를 위한 전선 최전방에서 분투할 각오다.

“유가 하락으로 중동 등 주력 시장이 위축됐어요.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기존 방식으로는 한계가 찾아오는 시기가 됐습니다. 다양한 솔루션과 제품, 원산지, 기술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팀원들과 매진하겠습니다. 또 본사의 엔지니어링과 시공, 턴키 노하우를 현지 법인, 출자사들에 전수하고 최적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해요. 이는 본사와 로컬의 시너지를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핵심 경쟁력이 될 겁니다. 저보다 잘하는 후배들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전진 배치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예요. ‘글로벌 넘버1’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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