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내화기준 2차사고 고려 전혀 없어”

“국내 내화케이블 시험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은 사실 새로운 얘기는 아닙니다. 온도기준이 낮다거나, 화재 현장에서 케이블에 가해질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은 이전에도 있었죠. 저희 LS전선도 수년전부터 유럽의 CPR과 같은 선진국 안전기준에 대해 검토하고 보다 안전한 제품을 개발해 수출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안전의식과 제도로 시장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황현주 LS전선 기반기술연구소 절연재료연구그룹 책임연구원은 “국내 내화시험 기준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낮은 온도 기준이 아니다”라며 “화재 현장에서 불이 나면, 2차 사고로 이어지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불이 나면 내외장재가 떨어지고, 기둥, 가구, 가전제품 등이 부서질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붕괴되면서 케이블을 건드리면 겉을 감싼 절연체가 뜯겨나갈 수 있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 뜨겁게 달아오른 전선이 갑자기 식기도 한다”며 “이 모든 변수에도 케이블이 제 역할을 하며 소방시설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고 피해가 보다 확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내화시험 기준도 이런 요소들을 모두 감안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단순한 내화시험에서 벗어나 타격, 분무 시험까지 추가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강화해 왔어요. 영국, 독일, 호주, 뉴질랜드 등 많은 국가들이 이 같은 움직임을 이끌고 있습니다. 더불어 호주나 뉴질랜드의 경우 750℃에 불과한 우리나라와 달리 1050℃에서도 버텨내는 케이블을 사용하니, 단순한 온도기준에서조차 차이가 크다는 걸 알 수 있죠. 라이터의 불꽃 온도가 500~600℃를 넘는데, 실제 화재가 났을 때의 온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요.”

황 책임연구원은 건물 등급별 차등 요소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학교를 비롯해 백화점, 영화관, 경기장, 병원 등의 시설은 보다 안전기준을 강화해야 합니다. 독일은 건물 용도마다 CPR 규정을 별도로 운용하고 있어요. 사람이 많이 있거나 중요시설은 보다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일반 건물이나 사람이 적은 곳은 안전 등급을 낮추는 식이죠.”

그는 “소방시설은 화재 상황에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때문에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방안전을 중시한다면, 보다 품질 좋고 신뢰성 있는 설비를 갖출 것이다"라며 "하지만 명심해야 할 부분은 소방설비에 전원을 공급할 전선이 잘못된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점이다. 내화케이블 기준 전반을 재검토할 시점이 다가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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