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냉기에 거리 곳곳이 얼어있다. 밤새 내리던 눈은 다음날 아침까지도 여전히 흩날리고 있다. 현장은 괜찮을까.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자, 수화기 너머로 “문제없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KTX에서 내려 차를 타고 달리기를 40여분. 안성천 현장에 도착하자, 잠시 주춤했던 눈발이 또다시 휘날린다. 현장사무소까지 10m여를 걷는 데도 강풍 탓에 몸이 휘청 인다. 옷깃을 여민 뒤 고개를 들자 비로소 하천 중간 중간 삐죽이 솟아나온 교량 하부 구조물 십 수개가 눈에 들어온다. 안성천 현장에는 충청남도 홍성읍과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90.01km를 잇는 서해선 복선전철 사업의 5공구가 위치해있다. 특히 이 공구는 충남·경기 두 개 도를 연결하는 아산(평택)고가 특수교량 설치 작업이 이뤄지는 곳으로, 전체 10개 공구 중에서도 작업 특수성이나 상징성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현장이다. 새해를 십 여일 앞두고 찾은 현장에선 한국철도시설공단과 협력사 관계자들이 교량 설치의 토대가 되는 수중 하부구조물 타설 작업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편집자 주)

◆아산(평택)고가, 충남-경기를 잇는 특수교량

현장 사무소 옥상 난간에 기대서니 안성천변에 잘 닦인 너른 공터가 눈길을 끈다. 언뜻 봐서는 한눈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다.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적재하고, 앞으로 진행될 교량 가공까지 한 번에 이뤄질 ‘서해선 복선전철 물양장’입니다. 전체 면적만 해도 축구장 면적(약 6400㎡)의 5배에 달합니다. 국내 최대 규모죠.”

송혜춘 한국철도시설공단 충청본부 서해선사업소장이 강변너머 반대쪽에 쭉 솟은 산등성이 밑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현장과 달리 서해선 공구는 이 물양장에서 공사에 필요한 자재들을 제작·조립 등 사전 작업을 거친 뒤 타 공구로 운반된다.

서해선 현장에 설치되는 특수교량을 제작하기 위해선 이 같은 대규모 물양장이 필요하다.

총 연장 5.9km 길이의 아산(평택)고가는 2.765km의 수상교량과 시점종부 육상교량 3.135km로 구성된다. 특히 안성천 상부에 들어설 주경간교는 총 연장 625m의 비대칭 5련 아치교로 구성돼 충남과 경기, 양쪽에서 밀려오는 두 기운이 만나 상승하는 느낌의 더블리브 아치 형태로 제작된다.

송 소장은 “더블리브 아치교는 상징성 측면에서도 빼어나지만, 기능적으로 기존 아치교보다 뛰어나다”며 “처짐현상이 일반 아치교보다 49% 수준으로 저감돼 안전성이 높은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드론・IoT 등 첨단기술 도입 스마트 안전관리 ‘앞장’

물양장 근처 강변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하늘을 찢는 듯한 굉음이 들려온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과박스 크기만 한 드론이 막 이륙 중이다.

이 드론은 수중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의 작업 상태를 확인하고, 실시간으로 작업자들의 안전모·안전 고리 착용여부, 현장 안전성 등을 확인하는 데사용된다.

“최대 2~3km까지 (드론을) 날릴 수 있습니다. 드론 내부엔 4K급 화질의 카메라가 달려 있어 현장을 세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현장 안전관리 PM이 드론을 조작하며 말한다. 그의 손엔 스마트폰이 연결된 드론 컨트롤러가 들려 있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자 현장에서 한창 작업 중인 직원들의 움직임이 눈앞에서 보듯 펼쳐진다.

서해선 현장에선 이러한 드론을 작업 전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구별로 평균 1~2대의 드론을 보유하고 있으며, 공구마다 드론을 조작할 수 있는 인원도 배치돼 있다.

이 같은 노력은 대외적인 성과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드론을 활용한 현장 안전관리’, ‘드론경진대회’ 시행 등으로 총 3개의 안전 관리 부문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서해선 현장에는 IoT·스마트태그 등 최신 기술을 적용한 각종 신식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

4공구에 구축된 ‘터널 관제시스템’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4공구 작업자들은 목걸이형 스마트 태그를 착용한 후 터널에 들어간다. 이때 현장 출입구에 설치된 ‘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DID)’가 갱내 차량·인원 등을 위치에 따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가스·계측 정보 등 현장의 안전과 직결된 사항도 DID에 표출돼 작업자들의 안전성이 크게 제고됐다.

이병길 공단 충청본부 서해선사업소 과장은 “기존에 수기와 유선 방식으로 이뤄졌던 출입통제·계측 등이 IoT 기술에 기반해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현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작업자들에게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자체 안전교육 통해 현장 안전성 ‘제고’

“이곳이 서해선 현장 안전의 출발점입니다.”

송 소장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추락체험장, 평균대, 가설건물 등 여러 설비들이 눈에 띈다.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만 한 이 공간에는 ▲종합 체험장 ▲가시설 체험장 ▲교량 체험장 ▲터널 체험장 등 4개 부분 21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체험 설비들이 갖춰져 있다.

서해선 현장의 남다른 안전관리는 바로 이 안전체험 교육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현장에선 전체 10공구에 근무하는 모든 인원에 대해 현장 투입 전 사전 안전 교육을 실시한다. 처음 현장을 찾은 작업자는 물론, 공단 관계자는 예외는 아니다.

가장 흥미를 끈 시설물은 ‘개구부 추락 체험장’이다.

이 설비는 개구부 덮개 미설치 상황을 가정 추락 사고를 경험함으로써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마련됐다.

송 소장은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사전에 ‘직접’ 체험해보는 데 중점을 뒀다”며 “안전이란 말로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체험해야 한다는 공단만의 원칙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해선, 서해안권에 새 바람 불러

지난 2015년 착공한 서해선 복선전철 사업은 이제 막 3부 능선을 넘었다.

노반 작업이 끝나고 본격적인 전철전력 사업에 돌입하면 오는 2020년 12월에는 개통하게 된다.

서해선 사업은 경부축 선로용량 부족 문제를 해소하는 동시에 서해안권에 대대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장항성․경부선 노선이 서해안까지 109분이 소요됐던 것과 달리, 개통 이후 서해선․신안산선을 이용 시 소요시간이 53분까지 단축된다. 이동속도가 두 배 빨라지는 셈이다.

이에 따라 서해안권에도 향상된 접근성을 바탕으로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향후 원시~소사~대곡 노선과 연계하는 한편, 향후 경의선을 통해 북한을 넘어 중국, 유럽과도 연결할 수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한 축이 된다는 점도 기대를 모으는 대목 중 하나다.

안성천변을 따라 돌아가는 길. 오후 내 뿌옇던 하늘이 맑게 개기 시작했다. 수중에 설치된 구조물 위로 곧 들어설 아산(평택)고가 교량이 눈에 보이는 듯 선명히 그려졌다.

“문제없습니다.” 오전에 수화기 너머로 들렸던 그 목소리가 새삼 귓가에 메아리쳤다. 서해선 현장은 안전, 또 안전을 강조하며 한 걸음씩 개통의 그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다시 현장을 찾으면 누구라도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서해선 현장, 이상 무!”

(미니 인터뷰)송혜춘 한국철도시설공단 충청본부 서해선사업소장

서해선 복선전철 사업은 사업 규모도 그렇지만, 노선이 가지는 의미나 파급효과도 상당하다.

특히 이 사업의 현장은 착공 이래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은 ‘무재해 현장’으로도 업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

사업초기 단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장의 중심에서 사업을 총괄해온 온 송혜춘 한국철도시설공단 충청본부 서해선사업소장에게 서해선 사업의 의미와 향후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안전과 품질 확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설정하고 있다. 서해선 현장에서는 ‘안전․품질 관리의 생활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3·3·3 안전운동’이 대표적이다. 매일 오후 3시 나와 동료, 주변의 안전을 점검하며 행복을 지킨다는 의미로, 작업자들이 ‘안전’이란 가치를 내재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또 매월 특정일에 장비, 현장 등을 집중 점검하는 ‘4·4·4 예방운동’을 실시, 품질관리에도 앞장서고 있다.

▲대규모 사업이다 보니 애로사항도 많을 것 같다.

아무래도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던 일반 부지에 건설현장이 꾸려진 탓에 민원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다.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갈등을 줄여나가고 있다. 아울러 농지가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 철도 신설로 인한 경지 점유와 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도 계속해서 강구 중이다.

▲이제 3부 능선을 넘어섰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서해선 복선전철 사업은 수도권과 서해안을 잇는 동시에, 지역경제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미가 큰 사업이다. 당초 계획대로 차질 없이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되, 품질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펼칠 계획이다. 또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무재해 사업장’ 기록도 사업 종료 시까지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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