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안전문제 ‘감성’ 아닌 ‘사실’에 바탕둔 접근방식 바람직
원자력전문가 부터 진정성 있는 눈높이 맞춤식 소통 병행해야”

원자력계는 지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기간을 거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소회한다. 그동안 전문가들의 일방적인 소통방식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응한 원자력계의 해법은 국민과의 눈높이 맞춤식 소통이다. 한은옥 한국원자력안전아카데미 전문위원을 만나 ‘원자력과 소통’에 대해 들어본다.

“원자력계의 배타적 소통으로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없습니다.”

한은옥 한국원자력안전아카데미 전문위원은 방사선안전 전공자다. 방사선은 안전문제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에, 한 전문위원은 현장에서 안전을 지키는 방법과 두려워하는 국민에게 ‘안전’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20여년간 고민해왔다. ‘원자력과 사회적 소통’에 관해 연구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는 현재 원자력의 안전문제가 ‘사실’이 아닌 ‘감성’문제로 변모하면서 국민안전을 더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안전은 사실에 기반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실보다는 감성에 좌우돼 국민 불안감만 증폭되고 있습니다. 국민과 원자력전문가들이 함께 염원하는 것은 결국 ‘안전’하면서 우리 삶을 풍요롭게 원자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 현장의 안전관리와 고급기술력이 중요합니다. 특히 현장안전을 위해 실효성 있는 제도가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데, 현재 국민의 불안감이 사회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이를 제도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전문위원은 규제강화로 안전을 담보하려는 현 시대적 상황을 염려했다. 원자력분야와 같은 전문기술 분야는 이에 따른 부작용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학의 여러 이론과 전문가의 주장을 보면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한 규제강화는 대형재난과 같은 상황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조직적, 사회적 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규제를 과도하게 강화하면 몇 가지 부정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현장의 특성에 맞는 위험요소를 스스로 찾아 보완하기 보다는 위험요소를 은폐할 수도 있고, 책임에 대한 두려움으로 현실적인 대응보다 행정 절차를 더 중요하게 따르게 됩니다. 또 사고 시에도 적극적인 대응보다 책임소재를 따지거나 책임을 떠넘기는 행동패턴도 보이게 됩니다.”

한 전문위원은 국민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다보면 오히려 원전의 안전을 위협하는 여러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심리적 요인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전문가에 대한 ‘신뢰’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국민안전 담보의 일환으로 ‘원자력과 눈높이 소통’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원자력실무전문가·원자력학계전문가·NGO단체장·전 과기부장관·에너지전문기자 등 전문가토론회, 언론인·법조인·심리학자·갈등전문가 등 집단별토론회, 직장인·교사·학부모·고등학생·대학생 등 일반인토론회, 5개 원전 지역 주민들까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5인 이하 소그룹 형태로 만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실제로 요구하는 원자력계의 소통이 무엇인지를 연구 했습니다.”

연구결과 원자력전문가와 국민 사이, 지역주민 간, 각 집단별로 매우 큰 인식격차가 있었다. 원전찬반 양측 모두 원전이 ‘안전’해야 한다는 데는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개인의 정보 차이와 소통문제로 집단 간, 개인 간 갈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원자력에 대해 막연하게 불안해한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원자력전문가들의 소통방식에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전문가들의 태도가 오만하다고까지 생각합니다. 다수의 국민은 원전사고가 두렵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불신으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인정받아야 할 전문가들이 오해를 받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결국은 눈높이 소통이 부족했고, 정보의 왜곡과 불신의 결과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전문위원은 고도의 기술자, 전문가들이 지금부터라도 개개인이 가족과 친구부터 소통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의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내용을 잘 아는 원자력계가 먼저 손을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원자력전문가들은 엔지니어들의 특성상 소통능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사회문화가 변화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전문가도 진정성 있는 눈높이 맞춤식 소통을 병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누군가가 하겠지’라는 안일한 태도는 그동안 원자력계가 쌓아올린 원전수출, 에너지 안보 등 공적을 위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부, 규제기관, 원자력계,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이 안전하고 풍요로움을 염원하는 마음은 같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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