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교통망 사업, 추진 전 면밀한 타당성 검토 선행돼야”

지난달 29일 호남 KTX 건설 예산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합의가 이뤄진 직후부터 합의 내용에 대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당초 하나의 ‘안’으로만 존재했던 무안공항 경유가 급작스럽게 합의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호남 KTX 2단계 사업은 광주송정~무안공항~목포를 잇는 77.6km 구간에 2조4731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무안공항 경유가 공식화된 가운데 이를 둘러싼 찬반양론이 달아오르고 있다. 광주시를 비롯한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과 달리, 일각에선 “정치적 결정이 앞선 관행”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합의가 타결된 지 일주일여가 지난 시점에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이번 사업과 관련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무안공항 경유는 선심성 예산 합의의 표본”이라는 비판으로 말문을 열었다. (편집자주)

“호남선 KTX 노선이 ‘ㄷ’자 형태로 바뀐 게 화제가 됐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이것이 ‘정치적 논리’에 따라 결정됐다는 것입니다. 현 정부가 호남선 사업 타결을 조속히 마무리하려는 기조를 보이자, 이를 호남 지역에서 입지가 좁아진 국민의당이 낚아챈 거죠. 그 과정에서 사업 자체에 대한 타당성에 대한 면밀한 논의는 실종됐습니다.”

김태윤 교수는 이번 합의가 그간 진행돼온 간이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전문가들의 평가와 상충되는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무안공항 경유 주장이 제기된 이래 찬반 양측의 공방이 오갔지만, 2015년 정부가 호남선 KTX 2단계 노선을 광주송정~나주~목포로 확정하며 논란이 일단락된 바 있다. 이듬해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제3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계획안에도 무안공항 경유는 언급된 바 없다. 지금의 논란이 촉발된 배경이다.

“합의 타결 전 진행된 논의들로 비쳐볼 때 경유 노선에 ‘사업성이 없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자체가 지역 숙원 사업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다만 이렇게 정치권이 나서서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면 ‘졸속 사업’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합의에 따라 호남선 KTX 2단계 사업이 거의 신규 사업이나 다르지 않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별도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이미 이명박 정부 때 ‘30대 선도 프로젝트’로 선정돼 조사 대상에 제외됐다”고 해명한 바 있다.

“당시 그러한 프로젝트를 추진한 까닭은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조기에 재정을 집행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지금과는 상황도, 맥락도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또 그 내용을 들여다봐도 ‘호남선 KTX’라고 규정해놨을 뿐인데 지금처럼 사업의 방향이 전환됐을 때도 이게 구실이 될 수 있을까요?”

예산안과 관련한 합의가 이뤄졌을 뿐이지만 이미 곳곳에선 완공 이후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안공항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KTX 노선 경유가 얼마나 지역경제 활성화에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대구의 경우 경부선 KTX가 들어선 뒤 유통업이 궤멸했고, 홍천~양양 고속도로 개통 뒤엔 인근 영세 식당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습니다. 교통망 확충이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증거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사업 전에 면밀히 그 타당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는 예비타당성 조사가 생략된 만큼 본 사업 착수 전 면밀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특히 일정 부분 교통망 체계가 확립된 상황에서 또 다른 교통망을 구획할 땐 더 많은 고려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 법엔 예비타당성 조사 외에도 사업 추진을 위한 타당성 조사 등을 진행토록 하는 근거조항이 있지만,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불확실성을 줄여나가기 위해선 사업 추진 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번 사업처럼 조 단위의 대규모 사업의 경우엔 말할 것도 없죠. 타당성 조사를 합리적이고 면밀하게 수행하는 것.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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