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절반 이상이 지난 50년간 한국경제의 가장 어려운 시기로 꼽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20년을 맞았다.

외환위기 이후 ‘불패신화’가 산산조각 나듯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주요 은행 26곳 중 16곳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초유의 국가부도 사태 앞에서 은행이 무너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지만, 금고에 현금을 잔뜩 쌓아놓고 있는 은행이 파산하는 일은 ‘저축이 미덕’이었던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제 1997년 외환위기, 2011년 저축은행 뱅크런 사태 등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은행도 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됐다.

은행이 파산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뱅크런(Bank Run)’이다. 직역하면 ‘은행(Bank)에 달려간다(Run)’는 뜻인데, 예금자들이 은행에 맡긴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를 우려해 대규모로 예금을 인출할 때 발생한다. 은행이 예금 전액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법정 지급준비율은 7%이다. 은행은 전체 예금의 7%만 한국은행에 맡기고 나머지 93%는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즉 예금의 7%만 돌려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거칠게 말하면 오늘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는 모든 은행은 뱅크런을 맞이할 수 있다. 모든 예금자가 일제히 은행을 찾아가면 손쓸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은 쉬이 발생하지 않는다. 예금자가 은행이 ‘내 돈을 떼먹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은행의 재정건전성과 관계없이 신뢰가 무너지면 뱅크런은 은행 문을 두드린다.

최근 원자력계의 상황을 지켜보면 뱅크런 사태와 겹쳐 보인다. 원자력계는 지진 등에도 원전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고 말하지만 국민의 공포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대형은행도 예금자가 불안을 느끼면 뱅크런이 발생하듯이, 원전이 안전하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원전은 유지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뱅크런을 예방하기 위해 1인당 5000만원까지 예금을 보호해주는 예금자보호법을 마련해 예금자를 안심시키고 있다. 원자력계는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내놓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이 원전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달리기 시작하면 때는 이미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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