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덕 수석연구위원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박상덕 수석연구위원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0일 탈원전을 선언하고 4개월이 흘렀다. 신고리5‧6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하고부터 원자력계 사람들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업무들이 마비될 정도로 힘든 기간을 보내며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했지만 건설되던 신고리 5‧6호기를 계속 건설한다는 것 이외에 남은 것은 없다. 오히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부의 허가를 받고 문제없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라도 정치적 판단 만으로 중지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정부는 대통령 공약사항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심도 있는 검토절차가 없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참으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에너지 정책은 일관성을 잃었고 정부에 대한 신뢰 또한 무너졌다.

한국 최초로 숙의 민주주의를 한다고 만든 공론화위원회 주관 하에 시민 대표단은 한 달간 활동을 했다.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한 달은 시민 대표단이 배우고 토론하며 나름대로 소화해서 결론에 이를 수 없는 너무나 짧은 기간이다. 원자력발전은 종합공학이기에 원자력을 전공한 사람들도 자기 영역이외에는 별도로 공부를 해야 이해 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은데 일반 시민들이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에 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제대로 된 결론을 낼 수 있을까? 건설을 재개하는 방향으로 시민 대표단이 의견을 모아준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지만 전문가의 영역에 있는 문제를 일반인에게 결론을 내도록하는 일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은 어떠했는가? 권한 밖의 설문을 끼워 넣고 그 결과를 권고함으로 인하여 마무리도 불법이 됐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에 관한 국무총리훈령에는 신고리 5‧6호기에 한해서만 권고할 수 있도록 명백하게 기술되어 있다. 시민 토론회에서도 이 기준에 따라 신고리 5‧6호기만을 대상으로 발표와 토의가 이루어졌는데 유독 설문에만 의도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축소 등 권한 밖의 내용을 끼워 넣었다. 물론 다른 내용을 설문에 넣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참고 정도 해야 할 것이지 권고사항에 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여튼 교묘하게 끼워 넣은 권한 밖의 사항을 권고하는 탈법을 저질렀다. 숙의 민주주의를 최초로 시험한다고 크게 나팔을 불었던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가 끼워 넣은 원전 축소라는 잘못된 결과를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여 내용을 확대한 후 탈원전을 공식화 했다. 이렇게 왜곡하고 부풀려 정책을 만들면 되겠는가? 사실 네 번의 여론조사에서도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원전 유지확대가 항상 높은 수치였다. 이럴 경우에는 통계의 의미를 한 번 더 확인해보는 것이 정상적인 것인데 원전 유지확대의 의견을 무시하고 비중 축소가 아닌 탈원전으로 발표했다. 게다가 절차적으로도 법적 형식을 못 갖추었다. 원래 에너지로드맵 등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위원회의 심의를 거처야 하는데 이런 절차가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내용도 절차도 모두 잘못되어 버렸다.

반원전 단체들의 왜곡, 과장된 주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은 원자력계의 잘못이다. 그로 인하여 반원전 단체에 동조하는 정부가 등장하게 되었고 신고리5‧6호기 공론화라는 불필요한 낭비도 했다. 그렇지만 원자력에너지는 이 나라에 필요한 에너지이기에 적정 비율을 지켜내야 한다. 이번 공론화를 통하여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진심을 담아 설명하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제부터는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 원자력계에 주어진 임무이다. 정부는 열려진 마음으로 논의의 자리에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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