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일면 숭실대학교 교수
황일면 숭실대학교 교수

어느 누구에게든지 어려움과 불행, 슬픔, 상실, 상처와 고통은 있다. 세상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을 누구나 겪게 되지만 이를 대하는 삶의 태도에 따라 삶의 결과가 다르다. 삶이란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현생에서 태어난 순간의 삶의 조건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을지라도,이후의 삶은 대부분 내 자신의 선택과 의지와 책임 속에서 가꾸어지는 것이며 내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그러기에 내 삶의 모든 결과는 설령 운명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남의 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잘된 것이나 기쁨, 성공, 행복 등은 내가 노력하고 선택을 잘 했기 때문이고, 잘못된 것이나 어려움, 실패, 슬픔, 고통 등을 겪게 되면, 운명을 탓하고 남의 탓으로 돌린다. 그렇기때문에 카톨릭에서 한 때 ‘내 탓이오’라는 스티커를 붙이며 자기성찰과 회개를 강조했던 일도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게되면 누구든 꼭 보아야만 할 ‘굿 윌 헌팅’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버림받고 학대를 받아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간직한 주인공 윌을 심리상담교수가 꼭 안아주면서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고 반복하며 이야기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버림받은 심리적 트라우마를 지닌 윌에게 자학하지 않도록 품어주며 그 상처를 치료해 준다.

상처를 입게된 것은 자신이지만 주인공 윌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그의 잘못은 아니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로 번역 출간된 독일 심리학자 배르벨 바르테츠키(Ba"rbel Wardetzki)는, 상처투성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상처를 이겨내는 힘을 기르는 것이고,상처로부터 나를 지켜줄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면서 ‘나의 잘못’과 ‘남의 잘못’을 분리하고,무조건 내 탓도, 무조건 남 탓도 하지 않으며 자신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주고 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에는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맹인을 예수님이 고쳐주시는 이적기사가 나온다. 유대교 성직자들은 구약성경 출애굽기와 민수기 등에 아버지의 죄악을 자손 3~4대까지 보응하리라는 말씀을 율법적으로 믿었었고, 부모의 죄가 자녀에게 상속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자녀들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경우에는 조상들이 저지른 죄의 유전으로 후손들이 형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율법조문 해석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답을 듣고 싶어서, 선천적으로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맹인을 앞에 두고 예수님에게 질문을 한다.

‘저렇게 나면서부터 맹인이 된 사람은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자기가 지은 죄 때문입니까?’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리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맹인이 된 것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라고 답하신다. 누구의 잘못 이오니까 라는 질문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논한 많은 책들과 말씀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내 삶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며, 운명도 내가 개척하고 반응해가는 것이기에 내 삶도 내가 책임져야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맹자에 나오는 구절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내 삶의 모든 것은 나에게서 비롯되었으며 나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너에게서 나간 것이 너에게로 돌아온다는 의미의 출호이자 반호이(出乎爾者 反乎爾)를 되새겨보게 된다. 네가 다른 사람을 대한 것처럼 다른 사람 역시 너에게 되돌려준다는 의미로 인간관계에 적용시켜도 되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많은 좌절과 실망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고 저주하기보다는, 겸손한 자세와 자기성찰의 자세로 ‘내 탓이다’의 의미로 깊이 새겨보는 것이 값진 태도일 것이다.

여러 번에 걸쳐 장애인 복지프로그램을 실행하면서, 안타까운 면도 있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었다. 중증장애를 가지고 지체가 불편한 그들은 누구도 탓하지 않았으며 우리와 다를 바도 없고 오히려 기쁨과 감사가 더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음 주에 장애인 행사를 하게 되면 더욱 깨달을 것이다. 선천적인 장애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그러나 삶은 각자의 것이다. 우리들의 삶도 남의 탓을 하기보다는 ‘내 삶은 나의 것이다.모든 삶의 결과는 나의 몫이다’라는 태도가 훨씬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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