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간 숨 가쁘게 달려왔다. 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의 최종권고안이 ‘건설재개’로 결정이 나면서 3개월간의 논란은 일단락됐다.

당초 찬반차이가 오차범위 내 초박빙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9%p로 벌어졌다. 또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전환'(탈원전)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 결과를 되짚어보고, 향후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을 전망했다.

◆숙의과정에서 더 벌어진 격차…연령, 성별 불문하고 ‘건설재개’ 다수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두고 찬반 양측의 격차가 숙의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1차 조사에 참여한 모든 응답자들을 보면 건설재개가 36.6%, 건설중단이 27.6%, 판단유보가 35.8%로 양측의 격차가 9%p였다. 이후 자료집 및 이러닝을 학습한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3차 조사에서는 건설재개가 44.7%, 건설중단이 30.7%로 찬반비율 차가 14%p로 더 벌어졌다. 마지막 숙의절차인 2박3일 합숙 종합토론회 후 실시한 4차 조사에서는 건설재개가 44.7%, 건설중단이 39.4%로 나타나 격차는 17.8%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유보응답 없는 양자택일 설문에서 건설재개 59.5%, 건설중단 40.5%로 조사되면서 양측은 최종적으로 19%p 격차를 보였다.

이번 조사에서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건설재개 의견이 더 많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최종조사 결과 20대는 56.8% 대 43.2%, 30대는 52.3% 대 47.7%, 50대는 60.5% 대 39.5%, 60대 이상은 77.5% 대 22.5%로 나타나 대다수 연령대에서 건설재개 의견이 더 많았다. 유일하게 40대에서 건설재개가 45.3%, 건설중단이 54.7%로 건설중단 의견이 앞섰다.

남녀구분 없이 건설재개 의견이 많았는데, 남자는 66.3%, 여자는 52.7%로 건설재개 의견이 많았다.

권역별로 수도권은 전국 평균과 유사한 경향을 보였으며, 영남지역은 건설재개가 68.7%로 더 많았고, 호남지역은 건설중단이 54.9%로 앞섰다.

◆한숨 돌린 ‘원자력계’…에너지 전환 촉구 ‘시민단체’

원자력계는 우선 한숨을 돌린 모양새다. 만약 건설중단이 결정됐다면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날개를 달고, 발전분야뿐만 아니라 원자력 전반이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원자력계에 팽배했다.

이 때문에 건설재개 측은 이번 신고리 5·6호기 건설문제를 ‘탈원전’의 대리전으로 여기며 총력전을 펼쳐왔다. 공론화위의 건설재개 발표로 급한 불은 껐지만, 탈원전을 둘러싼 논의는 이제 시작이라는 게 원자력계의 중론이다.

공론화 과정에서 건설재개 측으로 참여한 윤병조 부산대 교수는 “시민참여단이 어느 것이 과학적 사실이고 허위·과장된 내용인지 잘 판단하신 것”이라며 “신고리 5·6호기 건설문제의 기저에는 탈원전문제도 포함된 만큼, 앞으로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도록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적극적인 홍보와 가동중인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재열 원자력산업회의 부회장은 “국민 여러분의 믿음에 부응할 수 있도록 신고리 5·6호기를 튼튼하고 안전하게 건설해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보답하겠다”며 “이를 통해 우리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사랑받는 원자력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건설중단 측인 시민행동은 공론화위가 최종권고안을 발표한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시민참여단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시민행동은 시민참여단 53.2%가 ‘핵발전소 축소 의견’을 낸 것을 정부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행동은 “핵발전소 안전성 강화, 신규 핵발전소 중단, 노후핵발전소 조기폐쇄 등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에 핵발전소를 실질적으로 축소하는 것이 시민참여단의 뜻”이라며 “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행사에서 약속했듯이 생명·안전·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탈핵 에너지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건설중단을 주장한 이들은 시민참여단의 결정과 공론화 과정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박종운 동국대 교수는 “공론화위가 어떤 결정을 하든지 받아드려야 하지만 시민참여단이 건설재개로 뜻을 모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며 “종합토론회에서 지역주민 300만명과 원전건설업계 1만명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잘 판단하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시민참여단이 300만명의 잠재적 위험을 간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그동안 원전확대 정책의 중심에 있던 한수원과 정부출연기관들과의 대결에서 역부족이었고, 공론화위는 기계적 중립만 지키려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지 못했다”고 밝혔다.

◆文정부, ‘에너지 정책전환’은 고수할 듯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됐지만, 문재인 정부의 원전정책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원전정책은 탈원전 정책이 아닌 에너지 전환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탈원전’은 정치적 구호일 뿐 원전의 비중을 줄이는 에너지 전환 정책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부도 원전정책을 두고 극심한 갈등양상을 보이자 ‘탈원전’ 용어를 ‘에너지 정책전환’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정부정책이 당장 모든 원전을 폐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원전비중을 줄이는 에너지 정책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늘어난 원전비중을 줄이는 에너지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됐지만, 시민참여단의 의사가 탈원전 정책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정부에너지 정책에 힘을 싣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번 4차 공론조사 결과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를 묻는 2번 문항에서 53.2%가 ‘원자력 발전 축소’로 응답했다. 이에 따라 공론화위는 정부에 원자력 발전 비중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할 것을 권고했다.

8차 전력수급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조영탁 한밭대 교수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와 별개로 원전정책은 논의해야 될 문제로, 이제 본격적으로 공론화를 해야 할 시기가 됐다”며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원전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8차 전력수급계획에서는 원전비중을 적절하게 줄이고 전원믹스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원전을 어느 정도 속도로 어떻게 줄여나가야 할지에 대해 의견을 모아야 한다”며 “대안이 있다면 원전을 줄이는 방향이 맞지만, 대안 없이 탈원전을 할 수는 없다. 대안을 보고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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