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탁(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영탁(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세계적으로 혹은 국내적으로 환경문제는 그 대상과 피해가 불특정하고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사회의 불안과 두려움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사회여론이나 국민감정보다 해당 분야의 과학자나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자는 주장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주장에는 사회여론이나 국민감정은 문제를 추상적이고 감성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지만, 과학자나 전문가는 구체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한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당연히 일리가 있는 얘기고 올바른 접근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학자나 전문가가 늘 구체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수학자이자 동시에 철학자였던 까닭에 20세기의 데카르트로 불리는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현대 과학의 전문성은 곧 추상화를 의미한다”라는 아주 역설적인 표현으로 현대 과학을 호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이성과 과학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냈던 17세기 데카르트와는 정반대로 이성과 과학에 보낸 일종의 경고장이었다. 화이트헤드의 ‘전문화된 현대 과학의 추상성’이란 현대 과학과 전문가들이 매우 좁은 전문영역을 깊게 파고들면서 다른 영역과 분리되어 문제의 총체적인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적하는 말이다. 퍼즐 조각 하나 하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아는데 수백 개의 퍼즐로 구성되는 전체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 퍼즐 조각에 대한 구체적 지식은 퍼즐 맞추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 되고 만다. 세부적인 전문 지식은 높아지나 그게 오히려 전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문화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더구나 과학과 전문가의 영향력이 매우 비대해진 현대 사회에서 과학과 전문가가 자신의 좁은 영역의 지식을 ‘과학적 진리’인양 과신하게 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항생제가 지구상에서 바이러스성 질병을 퇴치할 것이라고 확신한 것은 의학자들이었다. 농약으로 해충을 박멸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농학자들이었다. 프레온 가스를 인류가 개발한 물질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기체라고 주장했던 것은 화학자들이었다. 초기에 기후변화가 지구의 자연스러운 기온변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것은 기상물리학자들이었다. 자연과학만이 아니다. 금융자유화가 가장 효율적인 금융시장을 만든다고 주장한 것은 경제학자들이었다. 하지만 항생제가 슈퍼 박테리아, DDT 농약이 조류의 멸종,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 파괴, 온실가스가 기후변화, 금융자유화가 세계 경제 위기를 유발하지 않았던가?

이 쯤 되면 ‘그럼 과학과 전문가를 믿지 말자는 것이냐?’ ‘과학과 전문성의 권위를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 아니냐?’라는 반론이 제기될 만하다. 물론 그건 아니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높고 아주 복잡한 환경문제일수록 과학이나 전문가의 지식이나 식견은 더 필요하다. 다만 이 경우 중요한 것은 과학이나 전문가가 어떤 자세와 책임을 견지하는 것인가라는 점이다.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이고 복잡한 영역일수록 과학이나 전문가는 자신의 좁은 지식을 ‘과학과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과대 포장할 가능성이 높다. 화이트헤드는 ‘과학과 전문성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과학과 전문성의 독단’에 대해 경고한 것이다. 실제로 현대 사회가 치른 많은 대형 환경 사고는 과학적 전문적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과학적 전문적 지식을 과신해서 발생한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우리 사회는 원전과 지진 문제, 미세먼지 문제, 가습기살균제 문제 등 국민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유발하는 문제들이 많이 겪고 있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과학과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과학과 전문가는 겸손하게 전문지식의 역할과 한계를 얘기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이해과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다. 일반 국민들도 이러한 과학과 전문가의 지식과 그 한계에 대해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면 두렵고 불안한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과학과 전문가가 자신의 지적 권위만 내세우면 사회 내의 불신과 반목은 심해지고 문제해결은 요원해진다. 과학과 전문성을 무조건 불신하는 ‘러다이트(Luddite)’적 사회도 문제지만, 사회의 불안과 두려움을 근거 없는 잡음으로 치부하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의 과학도 문제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 선진사회를 지향하는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쯤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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