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만 전 85세 된 기사분이 운전하는 택시를 탔다. 일본에서도 종종 고령 택시운전기사가 내는 사고가 심각하다는 뉴스를 접한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연세 드셨어도 일을 하실 수 있으니 좋으시겠어요.“라며 격려의 인사를 건내자 그 할아버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술술 풀어놓으셨다. 평생 운전하며 아들 둘을 대학원까지 보냈는데, 장남은 대학병원 주임교수이고 둘째는 중소기업 대표가 되었다고 한다. 누가 봐도 남부럽지 않은 자식농사인데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말 한 마디를 던지셨다. ‘아들은 다 소용없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고생만 하신 할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사는데 이 두 아들놈들이 명절에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이 아파도 노년까지 운전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처지였다. 심지어 장남이 의료진으로 있는 그 병원에 아버지가 입원해 수술까지 했는데 아들이 한 번도 병실에 와보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들이 찾아오지 않는 이유는 늙은 아버지가 재산을 숨겨놓고 본인들한테 더 주지 않는다는 오해 때문이라고 하니 기가 막혔다. 평생 길거리에서 목숨을 담보로 한 운전을 통해 그 정도 가르쳤으면 됐지, 무엇을 더 바란다는 말인가...

나 역시 아들만 둘이라고 하자 “쯧쯔..안됐어, 노후 대책 확실히 해놔야지, 내 꼴 안돼요.”라고 하셨다. 나도 장남과 늦둥이 아들까지 유학을 보내고 힘에 부치게 학비를 조달하는 입장이라 노후대책은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남 얘기 같지 않게 들렸다. 자식을 키워보니 새 생명을 열 달동안 품고 낳아서 온 정성을 다해 흠집없이 키워 대학까지 가르친다는데 얼마나 큰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가능한 일인지 알 것 같다. 자녀들에게 들어간 양육비와 학비만 모아도 집 몇채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라디오 방송 PD시절 제작했던 프로그램 중 ‘김수민의 해피패밀리’가 있었는데 명사 부부를 초청해 가족이야기를 듣는 코너가 인기였다. 한번은 공기업 임원 부부를 초대했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방송 스케줄을 세 번이나 연기했다. 나는 짜증이 났지만 워낙 바쁜 분이라 그랬거니 하고 몇 달 만에 방송 인터뷰를 가졌다. 그런데 방송 도중 장남 이야기가 나오자 사모님이 울음을 터뜨렸다. 아들만 셋인 이 댁은 너무도 재미있게 세 아들을 키웠는데 장남이 장가를 가자마자 본가에 발을 끊었다고 한다. 이유인 즉은 아들이 군인이라 여기저기 전근이 잦아 제대 후에 집을 사주겠다고 했더니 약속과 틀리지 않느냐며 새 며느리가 따지더니 그 뒤로 아들 녀석도 발길을 끊었다고.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아들만 있는 사람이 제일 불쌍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물론 큰 아들에 관한 부분은 편집해서 방송을 내보냈다.

그런가하면 전주에 사는 한 대가집 할머니는 평생 모은 재산을 속여서 빼앗아간 장남과 재판 중인데 그 장남이란 자는 모 병원 원장으로 그 지역 유지인데 사법부에 지인들이 많은지 번번이 승소를 하고 있다고 한다. 동생들 몫은 하나도 안주고 자신이 모든 재산을 차지한 파렴치한이다.

우리나라에서 노인 자살이 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식들한테 있는 돈 다 쏟아붓고 병들어 올 데 갈 데 없어지는 처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요양원에도 월 50-60만원, 요양병원도 월 120-150만원은 낼 수 있어야 입소할 수 있기 때문에 생계가 어려운 사람은 그 조차도 어렵다.

우리나라의 인구고령화 속도는 프랑스 115년, 미국 76년, 일본 24년과 비교할 때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층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7.2%로 OECD 국가 평균인 12.8%에 비해 월등히 높다. 65세 이상 노인 1490명을 대상으로 정신 건강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살펴본 연구에서도 삶의 질이 낮아짐에 따라 스트레스와 우울의 정도가 심화되고 이는 자살 생각을 증가시키는 데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 65세 이상 자살률은 1990년 대비 5배 가까이 증가(10만 명당 약 70명)했다. 한국은 2003년 이래로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자살로 인한 사망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나 역시 연로하신 친정어머니가 잦은 수술과 요양으로 병원생활 하실 때 보면 대부분 곁에 붙어있는 건 딸들이고, 대중목욕탕에도 어르신 모시고 와서 때밀어 주는 사람은 딸들이 많다. 이렇게 말하면 이 땅의 며느리들은 항의할 것이다. 물론 우리 어머니도 중풍으로 앓아누운 시어머니 대소변을 5년 가까이 치우며 어린 시동생을 키운 효부였고 지금도 그런 착한 며느리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철종 때에 고령군에 김상능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부모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고자 하였고, 그의 아내 최씨 역시 남편 못지 않게 시부모를 정성으로 받들었다. 자리에 누워 앓던 시아버지가 등창이 생기자 며느리는 그 상처의 피와 고름을 모두 입으로 빨아내고, 시아버지의 피부병에 제비 알이 좋다고 하자 한겨울에 제비 알을 구하려고 산 속을 뒤지며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한겨울에 제비가 날아와 김상능의 집을 한 번 휙 돌더니 마당 귀퉁이에 알을 낳고 날아갔다. 시아버지는 그 제비 알을 먹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제비 같은 미물도 부부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했던 것이다. 이에 나라에서는 이들 부부의 효성을 길이 기리고자 김상능에게는 효자각을 그의 부인 최씨에게는 효부각을 세워주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 부모가 열 자식은 키워도 열자식이 한 부모를 모시기 어렵다는 말은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격동기의 현대사에서 전쟁과 가난을 이겨내고 세계 최고의 교육열로 자식들을 키워낸 우리의 부모님들이 아닌가. 아들들이 무심하고 배은망덕하다 해도 며느리들이 효심을 잃지 않으면 내 한 부모는 돌볼 수 있다. 딸들이 친정 엄마를 함부로 부려먹고 구박해도 사위들이 인간성을 잃지 않는다면 장모의 인권은 보장된다.

잠언 말씀에 ‘부모님께 효도하면 이 땅에서 장수하고 잘된다’라는 말씀이 있다. 오래 살고 싶으면 효도하라. 이 땅의 아들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더 늦기 전에 참회하고 자신의 부모님을 가슴으로 안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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