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들어가는 입구부터 복도는 물론 회의실까지 수북이 놓인 생리대와 기저귀 박스들. 2명이 지나가기 힘든 복도를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지나간다.

쉴 틈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직원들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전화를 당겨 받기 바쁘다.

40여 명이 넘는 직원들의 자리 중 절반 이상은 빈자리다. 불법·불량 제품을 확인하러 가거나 시료 구매, 업계 담당자들과의 미팅 등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기자가 한국제품안전협회를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을 업무와 연관시켜 묘사해 본 것이다.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이케아 서랍장 사고, 올해 기저귀와 생리대의 위해성 논란 등이 발생하면서 국민들은 안전불감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품안전협회는 안전에 대한 이슈가 지속적으로 불거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최근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는 제품안전에 대한 ‘컨트롤 타워’ 마련에 나섰다.

이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제품안전관리를 전담할 수 있도록 ‘한국제품안전관리원’ 설립을 위한 ‘제품안전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개정안에는 국가기술표준원에서 담당해오던 여러 업무를 제품안전관리원으로 이전해 전문 안전 기관으로 확장하겠다는 내용만 명시돼 있을 뿐, 기관 설립에 따른 재원 마련 방안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제품안전관리원, 설립엔 ‘공감’

근본적으로 제품안전관리원의 설립 목적과 향후 안전 강화를 위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정부와 국회, 시민단체 등이 모두 공감하고 있다.

안전확인제품에 대한 위해도 평가와 시장 감시 및 신고 접수 사무를 안전인증기관이 아닌 별도의 독립 기관에서 책임지도록 방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를 통해 전반적인 제품안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게 공통된 시각이다.

개정안을 발의한 이훈 의원은 “제품안전관리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제품안전관리 업무 효율성을 제고하는 등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관리원 설립은 필수적”이라며 “국표원이 담당해 왔던 제품의 수입·유통 단계의 안전성 조사와 리콜이행점검 등 각종 업무를 독립된 안전 전문 기관이 일임해야 한다는게 이번 법안의 취지”라고 밝혔다.

여야에서도 그동안 관리원 설립에 대해서는 동의해 왔다. 하지만 기존 협회 인력의 고용승계 여부를 두고 입장차이가 있었을 뿐 제품 안전을 책임지는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는데 뜻을 일치시켜 왔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지난 국회에서 관리원 설립에 관한 개정안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논의 과정에서 국표원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줄이고 책임과 권한을 관리원에 이전하는 방안은 여야 모두 합의한 것으로 안다”며 “최근 안전에 대한 이슈가 부각되고 있는 만큼 이번 관리원 설립에 관한 개정안은 무사히 통과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영에 필요한 재원 마련 ‘불투명’

최근 발의된 ‘제품안전기본법 개정안’에 따라 제품안전관리원이 설립된다면 기존 국표원에서 담당하던 업무가 대폭 이관된다. 하지만 업무 확장에 따른 인력 채용, 사무실 이전, 활동비 등을 감안할 때 재원 마련에 관한 부분은 미흡한 실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제품안전관리원은 ▲제품안전관리제도에 관한 조사·연구 및 교육·홍보 ▲안전기준의 제정·개정을 위한 조사·연구 ▲안전기준 관련 자료의 발간·보급 ▲수입·유통 제품의 안전성 조사 등 12가지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이는 현재 제품안전협회가 수행해 온 5가지 업무에서 2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하지만 재원 마련에 대한 부분은 제품안전협회의 재산 일부를 승계한다는 내용만 명시돼 있을 뿐 추가적인 조달 방안은 전무하다.

현재 제품안전협회에서 업무 수행을 위해 지원하는 직원은 41명이다. 관리원으로 승격한 뒤 수입 유통 단계에 대한 조사와 안정성 조사, 정보 수집 및 분석 등에 관한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려면 적어도 150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현재 협회가 운영하는 한 해 예산은 약 40~50억 원 사이고, 구로에 위치해 있는 사무실을 매각하더라도 업계에서 내다보는 인원을 운영하기엔 무리가 있다.

또 관리원이 담당하는 업무 중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 분야가 없기 때문에 예산 마련에 관한 내용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게 일관된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국회의 의견은 존중하지만 기관이 자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지 않고 성급히 추진된다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것”이라며 “아직 논의할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여야와 협회, 업계가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일부 사업을 조정해 재정 조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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