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부터 비가 내렸고, 오후부터는 빗방울이 굵어졌다. 날씨도 예년보다 추웠다.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개막작 기자회견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상황이 닥쳐도 영화제는 열린다"고 했다. 지난 3년 간 온갖 풍파를 겪은 부산영화제에 날씨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항구 도시' 부산은 올해 가을에도 여지 없이 '영화 도시'가 됐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2일 오후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개막했다. 이날부터 21일까지 열흘 간 개막작인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 폐막작인 실비아 창 감독의 '상애상친' 포함 75개국 300편 영화가 해운대 일대 극장에서 세계 관객을 만난다.

개막식은 레드카펫 행사로 시작했다. 비가 내린 탓에 행사 초반에는 객석 곳곳에 빈 고싱 보였지만, 30여분이 지나자 야외무대 5500여석에 관객이 가득 들어차 부산영화제를 향한 여전한 열기를 느끼게 했다.

우의를 입은 영화팬들은 스타들이 등장할 때마다 큰 환호로 환영하며 개막식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했다.

안성기·손예진·문소리·조진웅·윤계상·송일국·이정진·김래원·문소리·이정진·권해효 등 한국 배우들이 레드카펫을 밟았고, 아오이 유우·가와세 나오미·장 피에르 레오·나카야마 미호·허우샤오시엔·올리버 스톤 등 세계적인 영화인들도 레드카펫을 걸으며 관객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이날 레드카펫을 밟은 영화인은 지난해보다 약 50명 많은 200여명이었다.

레드카펫의 마지막은 개막작인 '유리정원'의 신수원 감독, 문근영·김태훈·서태화 등 배우들, 그리고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장식했다.

본격적인 개막식은 배우 장동건과 그룹 '소녀시대'의 멤버이자 배우로도 활약 중인 윤아의 사회로 진행됐다. 개막식 축하 공연 후에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스즈키 세이준)·지석상(토니 레인즈)·한국영화공로상(크리스토프 테레히레) 등 시상이 이어졌다. 이어 올리버 스톤 심사위원장 등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을 소개됐다.

스톤 심사위원장은 "오랫동안 한국영화제 큰 존경을 가지고 있었다"며 부산에 온 기쁨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부산에 왔다. 한국이 위험(북한과의 외교적 위험)에 처해있는 거로 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모든 이들이 평화를 향해 갈구하는 마음은 꼭 간직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지난해 5월 세상을 떠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을 애도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영화제 개국공신 중 한 명이기도 한 김 부위원장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출장 중 심장마비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김 부위원장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고, 이후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추모 공연도 진행됐다.

개막 행사가 마무리된 뒤에는 개막작인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이 야외 극장에서 상영됐다. 한국 여성감독 작품이 개막작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며, 한국영화가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건 이번이 8번째다.

신 감독은 상영에 앞서 "부산영화제가 몇 년간 어려움을 겪었는데 우리 영화에도 죽어가는 나무가 나온다. 그렇지만 그 나무는 어떤 나무보다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남는다"며 영화제를 지지했다.

한편 '유리정원'은 마음에 상처를 입고 숲 속 유리정원 속에 자신을 고립시킨 채 나무가 되려는 여자와, 그의 삶을 훔쳐 소설을 쓴 무명작가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 여인의 사랑과 아픔을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신수원 감독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보여주는 영화라는 평가다.

개막식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 감독은 이번 작품에 대해, "신체를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영혼도 없는 것일까, 라는 생각에서 영화를 출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식물인간'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말이 재밌었다"며 "식물인데 인간인, 나무인데 여인의 모습을 한 형상을 떠올렸고, 그렇게 이 작품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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