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 도시' 부산은 올해 가을에도 여지 없이 '영화 도시'가 된다. 75개 나라에서 도착한 영화 300편이 오는 12일 출항 준비를 마쳤다. 지아장커·우위썬·쉬안화·가와세 나오미·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아시아 거장들 뿐만 아니라 대런 애러노프스키·스티븐 프리어즈·토드 헤인즈·기예르모 델 토로 등 세계적인 예술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부산에서 세계 최초로 상영되는 작품 99편(장편 75편)이 월드프리미어 부문을 통해, 자국 이외 지역에서 처음 관객을 만나는 영화 31편(장편 26편)이 인터내셔널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됐다. 이외 갈라프레젠테이션·뉴커런츠 등 다양한 부문을 통해 180여편 영화가 더 준비돼 있다.

◇관심 집중, 대런 애러노프스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마더!'다.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 13일 부산에서 국내 최초 공개되는 이 영화는 앞서 지난달 북미에서 개봉해 극찬과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평가보다 중요한 건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신작이 이번에도 역시 충격적이라는 사실이다. 강렬한 영화적 자극을 선사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현지 비평가들도 인정한 부분이다.

교외 저택에서 평화롭게 살던 부부 앞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이번 작품은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전작이자 걸작으로 평가받는 '레퀴엠'(2000) '블랙스완'(2010)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최고 연기파 배우인 하비에르 바르뎀과 최연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제니퍼 로런스의 연기도 기대를 모은다. 애러노프스키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부산영화제는 '마더!'를, "집착·헌신·희생에 대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아주 창의적이고 독특한 심리 스릴러로 올해 가장 화제가 될 작품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여성감독이 열고 닫는 영화제

개막작은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이고, 폐막작은 대만의 배우 겸 감독 실비아 창의 '상애상친'이다. 여성 감독 작품이 개·폐막작을 모두 책임지는 건 영화제 최초다. 상징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두 작품 모두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신수원 감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연출가다. 두 번째 장편 '명왕성'(2013)은 베를린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에 초청됐고, 세 번째 장편 '마돈나'(2015)는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진출했다.

문근영이 주연한 '유리정원'은 마음에 상처를 입고 숲 속 유리정원 속에 자신을 고립시킨 여자와, 그의 삶을 훔쳐 소설을 쓴 무명작가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 여인의 사랑과 아픔을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신수원 감독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보여주는 영화라는 평가다.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동물적 욕망과 질서로 가득 찬 세상에서 식물로 살아야 하는 여자의 가슴 아픈 복수극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창 감독의 '상애상친'은 아버지 묘 이장 문제를 놓고 딸과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이 갈등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각 세대를 대표하는 세 여성의 삶을 통해 중국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시대의 정서를 예민하게 그려내 주목받고 있다.

◇일본 영화의 약진

올해 영화제에는 여느 때보다 눈에 띄는 일본영화들이 많다. 기대가 높은 작품은 츠키카와 쇼 감독의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다. 이 독특한 제목의 영화는 스미노 요루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책은 지난해 250만부 이상 팔려나가며 일본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이른바 '췌장 신드롬'을 일으켰다.

영화는 청춘의 비밀과 이 비밀을 둘러싼 청춘들의 힘겨운 사랑이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평가다. 일본 차세대 스타 하마베 미나미와 키타무라 타쿠미 등이 출연했다. 츠키카와 감독 등 출연 배우들이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세계적으로 연출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국내에도 마니아를 보유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세 번째 살인'도 관객을 만난다. 그의 작품 세계에 처음 등장하는 법정스릴러물이라는 점이 관심을 끈다.

이밖에도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의 '아웃레이지 파이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유명한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신작 '나리타주'도 기대작이다.

◇그 영화가 궁금했다

세계 최고 영화제에서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올해 베네치아영화제 개막작인 '다운사이징'은 독특한 소재가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자꾸 늘어나는 인구 때문에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사람들을 손가락만한 크기로 축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연출을,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았다.

올해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루벤 외스틀룬트 감독의 '더 스퀘어', 심사위원상을 받은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러브리스'가 준비돼 있다. 또 경쟁 부문 진출작인 토드 헤인즈 감독의 '원더스트럭', 프랑소아 오종 감독의 '두 개의 시선'도 시네필의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다.

파티 아킨 감독의 '인 더 페이드'도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이다. 다이안 크루거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이 작품은 네오나치주의자들의 폭탄테러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인 카티아의 법정 싸움을 그린다. 2000~2007년 독일에서 실제로 벌어진 터키 공동체를 대상으로 자행된 극우주의자들의 공격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자의 절망을 온몸으로 표현한 크루거의 연기가 독보적이라는 평가다.

이밖에도 '영웅본색' '첩혈쌍웅'시리즈로 홍콩 누아르의 정점에 섰던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신작 '맨헌트', 쉬안화(許鞍華) 감독의 '그 날은 오리라',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의 '빅토리아&압둘'도 주목해야 할 영화들이다.

한편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12~21일 부산 해운대 일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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